출판사를 통해 출간을 계획한다면, 원고 집필에만 힘을 쏟으면 된다. 그러나 독립출판을 계획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출판에 관한 모든 걸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출판 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게 있다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이다. 원고가 준비되었다면 책 만들기를 시작한다. 책 만들기는 인디자인으로 한다. 인디자인으로 글을 내지에 앉히고 표지 디자인을 하면 된다. 여기서 하나의 프로그램이 더 필요하다.포토샵. 포토샵의 역할은 책에 들어갈 사진이나 그림 등의 이미지 색상 모드를 RGB에서 CMYK로 변환하고 해상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인디자인에 사진과 그림을 넣으려면 포토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책 표지에는 사진 혹은 일러스트가 들어간다. 일러스트를 스스로 그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럴 수 없다면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로 활동하는 작가에게 의뢰 후 그림을 받아서 표지에 삽입해야 해야 한다. 일러스트를 의뢰하려면 비용이 든다. 작가마다, 일러스트의 작업도 마다, 비용이 상이하다. 기준점을 잡기 어렵지만, 대개 저마다의 경제력에 따라 적게는 30만 원부터 많게는 200만 원 이상까지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평균적인 금액이 100만 원 전후였다. 친분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를 안다면 30만 원 안쪽으로 협의를 할 수도 있다. 나는 경제력이 어려운 관계로 표지에 무료 그림을 넣었다.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일러스트와 사진을 제공하는 곳은 인터넷에 '상업용 무료 사진'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많이 알려진 사이트로는 픽사베이가 있다. 화가가 고인이 된 지 70년이 지난 명화는 무료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독립출판 서적 중 표지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명화와 사진이 많이 사용된다.
독립출판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표지와 내지를 작업한다. 첫 번째 형태는, 비용이 들더라도 일러스트, 내지, 표지 작업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주위를 보니 독립출판은 친분이 있는 작가끼리 협업을 잘 이룬다. 아는 작가가 없다면 크몽과 같은 플랫폼이 도움이 된다. 크몽에는 의뢰할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가 여럿이다. 작업 비용이 투명한 편이고 다른 사람의 후기를 찾아볼 수도 있다. 비용과 후기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부분으로 작용한다. 손품을 팔아 SNS 검색이나 주위 인맥을 통해 작가를 알아봐도 된다. 책을 만드는 전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할 시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수백만 원이 들어간다.인쇄비는 꼭 필요한 비용이어서 미리 산정해 놓아야 한다. 그 외 일러스트와 내지 표지 디자인에 수백만 원을 들일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두 번째 형태는, 독립출판 강의를 듣고 스스로 하는 것이다. 독립출판 강의는 4주에서 10주에 걸쳐 이루어진다. 한 달 혹은 두 달 보름간, 원고 집필부터 표지와 내지 디자인 그리고 출판과 유통에 관해 배운다. 여기서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익히게 된다.
세 번째 형태는, 책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독학하는 것이다. 독학으로 독립출판에 성공한 작가도 있지만, 두 번째 방법을 많이 선호한다. 나 역시, 두 번째 방법을 통해 독립출판 세계에 발을 디뎠다. 어떠한 형태로든 독립출판에 성공하게 되면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 활동 중 하나는 북페어에 참여하는 것이다. 북페어는 예술계통의 창작자, 독립서점, 출판사 등이 함께하는 행사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화가, 사진가처럼 예술계통에 있는 다른 작가를 만날 수 있다. 북페어에 나갈수록 아는 작가가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된다. 마음이 잘 맞거나 협업 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작가끼리 작업을 함께 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처음엔 출판에 관한 모든 걸 혼자 했어도 때에 따라서 서로의 재능을 나누며 새로운 창작이 가능하다.
독립출판 강의 들으러 노트북 들고 강연장 가던 길
2022년 어느 가을날, 독립출판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고 단박에 독립출판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10주에 걸쳐 들었는데, 인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수강생의 다수가 와르르 무너졌다. 강의가 막바지로 가면서 나오지 않는 수강생이 늘어났다. 15명이 시작해 마지막 강의에 참석한 수강생은 단 3명이었다. 단 한 명도 독립출판으로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 실패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독립출판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인디자인의 영문판과 한글판에 있었다. 지도해 주는 강사는 영문판 인디자인을 사용했고, 나는 한글판을 썼다. 여기서 강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는 상황이 왕왕 발생했다. 집에 가서 유튜브를 찾든, 강의에서 나누어준 자료를 참고하든, 인디자인을 연습하는 게 옳은데 그러지 않았다. 이러니 실패할 수밖에. 다른 수강생의 상황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인디자인 실습에서 다들 무너진 걸 보면 아마도 내 상황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짐작한다.
SNS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강의를 듣고 독립출판을 뚝딱뚝딱 잘 해내는 걸 볼 때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실패의 쓴맛은 왜 나는 안되나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독립출판은 나와 맞지 않은 것인지,라는 생각에 내면으로 침잠해 가던 날도 있었다. 몇 달은 아예 독립출판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복잡했다. 머릿속이 정리될 때까지 독립출판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사이 아무리 바빠도 글은 또 깨알같이 쓰니까 책이 될만한 원고가 쌓였다. 독립출판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도 조금은 누그러진 상태였다. 때마침 아는 작가님의 강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독립출판에 재도전장을 내밀어 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발동이 걸렸다.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한 번도 다루어 보지 않은 사람들도 다 잘 해내는데, 내가 왜 못해!라고 여기니 용기가 났다.
삼세판. 그래, 삼세판! 적어도 세 번은 해 봐야지. 소침해지지 말자. 어릴 적, 한글을 익힐 때부터 모든 영역에서 또래보다 느리고 더뎠으니까. 친구들이 사부작사부작 무언갈 할 때, 나는 야단법석을 떨어야만 해낼 수 있었으니까.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 따라가나. 따라가려는 마음 자체가 욕심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너그러이 대하지 않으면 안 되지. 다행히 독립출판 강의를 결재할 약 30만 원이 통장에 있었다. 강의를 결재했다. 두 번째 독립출판 강의는 6주 과정이었다. 6주간 다른 거 안 하고 인디자인과 포토샵 복습을 반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번 실패 후 드디어 완성한 ,첫 독립출판 책
강의를 들으러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해 놓고 서울로 갔다. 강사님은 지난번 기수 때 한 명도 독립출판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제야 내가 앞서 들었던 독립출판 강의에서만 죄다 출판에 실패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독립출판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또다시 실패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강사님은 이번엔 제대로 지도해서 전원 다 책을 손에 쥘 수 있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말에 이번엔 무언가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솟아났다. 강사님과 나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이 ‘독립출판’을 향하고 있었다.
강사님은 한글판 인디자인을 사용했다. 그래서 인디자인 실습을 몇 번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같은 프로그램이어도 강사와 수강생이 통일된 판형을 사용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배운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반복해 연습했다. 모르는 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서. 강의 시간엔 인디자인을 헤매고 있는 수강생을 이미 숙지한 수강생이 가르쳐 주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도와가며 6주를 보냈다. 수강생 전원은 저마다 손수 지은 책 한 권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배를 들었다.
독립출판 강의를 참여하게 되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글을 쓰고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익혀야 하는 와중에 출판 과정까지 배우기에 정보량이 어마어마하다. 강사님 입에서 정보가 쏟아져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하나 다 필요한 내용이어서 착착 잘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렇게 정리해 놓은 자료는 정식으로 인쇄소와 계약을 하고 출판을 하면서 수시로 들추어 보게 된다.
독립출판 강의에 대한 과정은 활자로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다. 방대한 자료가 아니더라도 실습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어서이다. 독립출판 강의를 염두하고 있다면,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독립출판 강의 홍보 자료를 보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 없이도 몇 주면 책을 만들 수 있다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책 한 권이 될 만한 분량을 써보지 않은 사람도 짐작할 수 있다. 4주 혹은 10주 만에 책 한 권을 쓰고,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익히고, 출판 과정을 배우는 게 수월한 일인지에 대해.
출판사 신고하러 가기 전, 관할 구청에 유선으로 필요 서류를 확인하는 걸 추천. 인터넷으로 잘 못된 정보를 얻어서 엉뚱한 서류를 준비해 갔다는 사실ㅠㅠ 처음으로 받은 ISBN.
출판 과정에서 공통으로 표지와 내지에 쓰일 종이를 정하고 인쇄업체를 거쳐 책을 찍게 된다. 국제표준 도서 번호인 ISBN을 받아 책에 바코드를 넣으려면, 출판사를 창업해야 한다. 창업이라는 말이 거창하지만,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관할 구청에 제출하면 된다. 그다음 세무서를 방문하거나 홈택스 홈페이지에서 사업자를 등록한다.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ISBN을 신청하면 끝이다. 1년에 두 번, 2월과 5월에 출판사 신고를 해야 한다. 출판사가 영업 중이라는 걸 알리는 것이다. 책이 거래되면 이익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홈텍스에도 신고한다. 이러한 일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혼자 다 하려면 혼란스럽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독립출판 강의에 참여하면 책을 만들 수 있겠지,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안일함이다. 나도 처음엔 안일한 태도였다. 그 결과 실패를 하고 말았다. 저마다 다른 일이 있기에 독립출판에만 매진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독립출판을 결심했다면, 마음을 단단히 하고 효율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예를 들면, 꼭 해야 할 일 이외 사적인 약속 잡지 않기, 잠을 줄이더라도 인디자인과 포토샵 연습하기, 모르는 것 그냥 넘어가지 않기, 이해하지 못한 건 다음 강의에서 알 때까지 반복해 질문하기 등등.
이건 독립출판에 실패하고 성공하며 알게 된 것이다. 강사님은 영문판 인디자인을, 나는 한글판 인디자인을 사용한다면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인디자인 용어를 익혀 적용하는 게 맞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면 한글판 인디자인을 유튜브 영상으로라도 익혀야 한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음 강의 때 꼭 질문한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해서 짜증을 내거나 시간이 없다고 하는 강사님은 없을 듯하다. 대부분 수강생의 질문에 답을 해 준다. 모르는 걸 질문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건 모르는 걸 알려고 하지 않은 태도이다. 알아야 할 걸 모른 채로 넘어가는 건 스스로에 대한 방임이라고 여긴다. 자신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은, 어떻게 되든 말든 스스로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기를.
P.s // 독립출판 강의는 각 지역의 독립서점이나 출판에 관한 문화를 전하는 센터에서 들을 수 있다. SNS에서 #독립출판강의 #독립출판수업 #독립출판과정 #독립출판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어디에서 수업이 열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안성시에 있는 C문화센터에서 독립출판 강의를 듣고 실패 후, 서울에 있는 마포진흥출판센터에서 다시 강의를 듣고 출판에 성공했다.
두 번째 표지 리커버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표지 리커버. 3번 다 직접 디자인함. 그림은 무료 이미지 사용. 독수리타법으로 인디자인과 포토샵을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럴듯한 목업작업도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