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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Jul 25. 2023

부러움 그 이면에 감춰진 어려움

 매주 월요일에는 시립도서관이 문을 안 여는 관계로 집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는다. 책을 읽다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켠다. 오늘 방문한 카페는 동네에서 커피 맛이 아주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유일하게 로스팅을 직접 하는 카페다.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이곳이 본점이다. 1호점, 2호점, 3호점, 4호점 등 다른 지역에 총 4개의 지점이 있다. 한쪽 벽면에는 책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어느 블로그에는 북카페라는 후기가 있다. 한쪽에 마련된 옛날 오디오 (아마도…) 옆에는 몇 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는데, 올 때마다 바뀌어 있다. 소설만 따로 모아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소설집이다. 사장님 내. 외는 소설을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카페는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의 원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따스한 분위기이다. 곳곳에는 식물이 있고 가사 없는 차분한 때로는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사람도 북적이지 않아(내가 방문하는 시간 때에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 아, 부럽다.”, 하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곧 부러움을 거두어들인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 내. 외분의 속사정을 알 수 없기에.

 

 지난번 카페를 방문했을 때,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라는 걸 느끼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카페를 방문한 날이었음에도 여 사장님과 다소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카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면 한 잔을 리필할 수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마셔봤던 터라,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리필이 가능한지 궁금한 참이었다. 

 

커피볶는자유 본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서 여 사장님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리필이 되나요?”, 하고 물었다. 여 사장님은 나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딘가 불편한 듯해 보였다. 곧 “리필 안 돼도 괜찮아요. 아메리카노는 리필이 되는 걸 알고 있었는데, 따뜻한 커피만 마셔봤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처음 주문해 봐서 아이스도 리필이 되는지 궁금했어요.”,라고 서둘러 말했다. 여 사장님은 그제야 왜 어색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 물음을 풀어주었다. “리필을 해 드리는 건 커피를 다 마시고 부족한 분에게 마음껏 커피를 즐기게 해 드리고 싶어서였는데요. 손님 중에는 저희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요. 원래 오셨던 분이니까 리필해 드릴게요.”,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리필은 말 그대로 부족할 때 한 번 더 받는 것일 텐데. 커피 리필을 다른 의도로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었다. 다 마시지도 않고 리필을 해 달라고 한 손님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한 잔을 주문하고 둘이 나누어 마신 뒤에 리필을 해 달라고 한 것일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위로를 잘 못 하는 편이다. 위로해 드린답시고 내가 하는 일의 어려움을 줄줄이 말했다. 한참을 말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건 위로가 아니라 넋두리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부끄러움에 급하게 말을 줄였다.  


 혼자 하는 일도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하물며 카페 운영은 하루에도 여러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만큼 속이 상하는 일이 있겠지 싶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려움이 따른다. 여러 어려움 중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여긴다. 다른 어려움이야 하나씩 해결하고 보완하면 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일은 혼자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기에 유독 힘이 든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은 살아 있어서 마음을 다치게도 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는 혼자 일하는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콩나물시루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 퇴근해야 하는 누군가는, 집과 직장이 하나인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건 그 이면에 감춰진 어려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 타인의 어려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좋은 모습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된다. 부러움이 들면, 내 처지는 왜 이럴까, 라며 비관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아무리 속 편하고 좋아 보여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에. 자신이 처한 사정과 형편은 저마다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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