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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Jul 20. 2023

하루는 수많은 선택으로 굴러간다

 주 4일 오전 9시 30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출근하듯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이 쉬는 월요일에는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른다. 출판사를 운영하기 전에도 주 3~4일은 도서관에 갔지만, 시간이 들쭉날쭉했다. 출판사를 열고부터 매일 아침 8시가 땡 치면, 발주서 확인 후 거래 명세서를 출력하고 책을 포장해 택배를 붙인다. 그리고 곧장 도서관으로 간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서관에 갈 수 있는 마음을 놓쳐 버리기 쉽다.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 등교를 도우며 택배를 보낼 준비를 하느라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다.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눕고 싶어 진다. 한번 누우면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싫어진다. 그래서 애초에 의지박약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야만 하루가 순탄히 흘러갈 수 있다. 순탄히 흘러가는 하루처럼 마음도 순항한다.


 누군가 “왜 꾸역꾸역 도서관에 가려고 해요?”,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도서관에 꼭 가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몇 년을 그래왔듯, 집에서 글을 써도 된다. 하지만 어수선해서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컴퓨터방이 책, 포장재, 박스로 가득해져 버렸다. 홍보를 위해 주 2회는 포토샵으로 카드뉴스를 만들고, 몇 달에 한 번이지만 주말엔 북페어에 참여하다 보니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전처럼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6시간씩 컴퓨터 앞에 붙어 있을 여유가 없다. 글이 나오지 않으면 독서를 하던지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짧고 굵게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주 4일 출근하는 집 근처 시립도서관


 도서관에서 머물 수 있는 건 3시간 정도이다. 단 1분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효율을 낼 수 있다. 가능하면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하고, 가더라도 빠른 걸음으로 다녀온다. 도서관에서 뛰어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될 수 있기에 경보하듯 걷는다.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매일 몇 번씩 선택을 한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뜰지 다시 알람을 맞추고 조금 더 잠을 잘 것인지부터 선택은 시작된다. 아침식사로 어떠한 메뉴를 할지(혹은 먹을지), 아니면 아침식사를 하지 않을지, 비가 내릴 듯 말듯한데 우산을 챙겨나갈지 말지, 출근길에 커피를 살지 말지, 불쾌한 일에 짜증을 낼지 말지, 현타가 왔을 때 회사를 때려치울지 말지, 저녁엔 맥주 한 캔을 마실지 말지… 등. 너무나도 많은 선택 앞을 서성인다. 수많은 선택으로 하루는 굴러간다. 어떠한 결정을 해야 좋을지 잘 모를 때엔, 마음을 살핀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쪽으로 선택 버튼을 누른다.


 장마철이라 간밤에 비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오전까지 그칠 줄 몰랐다. 마음도 몸도 왜 이렇게 처지는지. 이런 날 일이 꼬인 적이 여러 번이었다. 아마, 컨디션이 날씨에 영향을 받아서 그랬던 듯하다. 비 오는 날에는 가능하면 집 안에만 머무는 게 신상에 이롭다. 그런데 집에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아서 집을 나섰다.


 도서관으로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도 무거웠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지친 숨결이 올라왔다. 자리를 잡고 독서대와 노트북을 펴는 그 짧은 몇 분 동안, 서서히 정신이 예열되었다. 날이 좋으면 도서관에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흐린 날에 도서관이 북적인다. 시험이나 자격증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수는 큰 변동이 없다. 책을 읽는 사람,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등 자신만의 세계로 접속한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점점 번져 나에게로 닿았다. 어제 읽었던 부분을 펼쳐 첫 문장을 읽으려고 하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 오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바탕 두 챕터를 읽고 나서 마음이 정비되었다. 노트북을 열어 글 한편을 완성했다.


 반복되는 일도 간혹 힘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힘듦을 견디고 일상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에게 옳은 길은 이러한 선택이다. 이럴 때면 나는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안정감이 든다. 자존감이 켜 세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옳은 선택이 모여 순탄한 하루를 만들고, 순탄한 하루들이 모여 안온한 삶을 이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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