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아 Jul 14. 2023

좋은 사람

 나는 사적인 자리를 잘 갖지 않는다. 언제인가부터 누군가와의 사적인 만남이 월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제 작년엔 한 명의 친구를 두 번 만났고, 작년에는 단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동료작가를 만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그는 3년째 매일 단톡방에서 ‘작모닝’(작가의 모닝의 줄임말)을 외쳐준 작가 중 한 명이다. 내가 출간 작가가 아닐 때부터 작가의 모임에 초대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작가의 모임에 리더이다. 언젠가는 그를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갑작스럽긴 했지만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가 대기업 임원인 걸 보면, 작가라는 직업은 부업인 것 같다. S.K.Y 대학 중 한 곳을 졸업했다는데,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했나 보다. 공부를 못해도 아주 못했던 나와는 간 극이 흐른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 이제 와 따져본들 무용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살아온 삶과 먼 거리의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묘한 정서를 느낀다. 부담스러운 건 아니다. 뭐랄까. 좋으면서도 신중해지는 듯하다.      


 그는 오늘 회사를 쉬는 날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일찍 먼 거리를 와준다기에, 전날부터 어떠한 걸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대기업의 임원이 얼마나 바쁜지, 그 자리에 닿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휴일인 오늘 얼마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지, 짐작만 할 뿐 세세히 알 수 없기에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중년이 되면 친구 사이에서도 어떠한 목적 없이는 쉬이 만나지 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꾸만 “인사이트 있는 걸 주어야 할 텐데요.”, 하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그는 나의 말에 아무 목적 없이 나를 보러 왔다거나 나와 대화를 나누러 왔다고 답해주었다. 그의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뭉클한 순간들이 있었다. 


 최근 들어 타인에게 나를 보여주는 걸 조금은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보고 대화를 나누러 왔다는 말에 오늘만큼은 솔직한 나를 보여주자는 마음이 되었다. 그와 마주 앉은자리의 편안함이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그 라면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봐줄 거라는 믿음이 문득 들었다. 우리가 만난 카페가 나에게 익숙한 장소라 더 편안했던 것도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에서도 좋은 면을 발견해 주었다. 다정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어떠한 시각으로 보면 자기 자랑으로 비추거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한 말속에서도 좋은 점만을 바라봐주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내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쩌다 이렇게 몸이 앞으로 기울었나 싶어 웃기기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참 많이도 즐거워하고 있구나, 하는. 


 서로 커피를 사겠다고 앞다투는 모습도 정겨웠다. 우리가 만난 카페는 내가 자주 가는 곳이어서 커피와 베이커리의 맛을 잘 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늘의 음료와 빵은 유난히 맛이 좋았다. 좋은 사람과 먹는 음식인데 무엇인들 맛이 없을까. 


 나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기보다 소진하는 편이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이어가면 기운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는데, 오늘은 달랐다. 그와 2시간 반가량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지치지 않았다. 되려 기운이 더 솟았다. 누군가와의 만남 후 에너지를 얻은 게 무척이나 오랜만이다. 마음이 충만해진 게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말을 실수하지 않았나 검열할 필요가 없었던 건, 그 마지막이 언제 적이 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관계란, 목적 없이 만날 수 있는 사이,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사이가 아닐까. 그도 나처럼 풍요로운 마음 가득 안고 돌아갔기를 바랄 뿐이다. 그가 전해준 다정함과 고마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언젠가 꼭 돌려주어야겠다. 아무런 목적 없이. 



덕불고 필유린

덕필유린(德必有隣)이라고도 한다.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내기,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