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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Jul 06. 2023

마음을 내기,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사람은 가진 게 없을 때 서로에게 깊이 기대어 살아간다. 전쟁통이나 재난 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돕고 의지했다. 누군가 내 밥그릇을 탐할까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나의 것을 빼앗길까 봐 날을 세우는 일도 없었다. 그저 서로 나누었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6.25 전쟁 중의 일을 들을 때마다 경이로움을 금치 못하곤 했다.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저서에서 전쟁에 관한 글을 읽을 때면, 잊고 지냈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새록새록 다시금 생각난다. 그 이야기 속에는 인간다움이 서려 있었다. 뭐 하나 가진 게 없던 시절, 배고픔에 굶주렸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주먹밥 한 덩이가 생기면 곧바로 뱃속으로 넣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먹기에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양이어도 굶고 있는 어린아이 혹은 힘없는 노인과 나누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혼돈의 세상이 가고 물질의 풍요를 맞이했다. 그런데 먹거리가 풍족해도 허기가 진다. 배가 부르다고 해서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건 아니다. 인간다움은 숨바꼭질 놀이라도 하는 듯 자취를 감추어 간다.


 험하고 힘겨운 시절에도 자기 잇속만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있었을 텐데. 지금과는 그 비율이 다른 듯하다. 사람들은 많이 배워서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 계산기를 두드린다. 조금이라도 비어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더 많은 지식과 물질을 꾸역꾸역 챙겨 넣으려 한다.

 가끔 나의 아이를 볼 때면 절로 나오는 깊은 한숨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쓴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 거라 여기는데, 아이에게 꼭 물려주어야 할 게 인간다움을 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살던 인천 동춘동 농원마을은 피난민으로 이루어진 동네다. 이웃들은 국가에서 흙이 오면 모두 모여 맨손으로 벽돌을 빗었다. 꼭 메주같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렇게 50여 채의 집을 지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도 뭐 한 10평도 안 되는 공간 하나가 완성되면, 약 서른여 명의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여성들이 종잇장을 켜켜이 댄 듯 옆으로 누워 잠을 청했다. 가진 거라곤 몸과 마음뿐이던 사람들은 맨땅에서 함께 일어섰다. 그래서인지 더욱이나 나누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수박 한 통을 놓고 온 마을 사람이 모여 앉았던 날들. 옥수수 한 통을 쪄서 가져와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으던 아주머니의 목소리. 바지락 사이에서 맛조개가 나오면 푹푹 삶아 아이들 입에 쏙쏙 넣어주던 할머니의 불은 손. 나를 키운 건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간다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배웠다. 그러나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어주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없는 걸 보니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다. 작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두려움을 더 떨쳐낼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내다가도 어리석은 생각에 발목을 잡혀버린다. 필요한 걸 취하고 간 사람에게서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움이 되면 머물렀다가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에 떠나간 사람에게서 배신감을 지울 수 없다. 말은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같이 하다가 결정적일 때 등 돌리는 사람에게서 이미지를 포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불온한 마음을 안고 살다가 마음의 병을 얻고 나서야 인간의 세속화를 받아들였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p. 84)


 그 누구에게도 기대감은 없었다. 그러니 실망할 일도 없어서 한동안은 편했다. 무미건조해진 나를 어쩌지 못해 또다시 책을 파고들던 날들이 이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이 가닿은 책은 죄다 철학서였다. 눈에 보이는 것에는 관심 없는 사람처럼 읽고 또 읽었다.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물안개 속을 걷듯 활자의 숲에서 헤매었다. 지쳐갈 즈음, 하나의 앎이 나에게로 왔다. 그것은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인간다움의 핵심은 ‘사랑’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걸 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서, 이용당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서,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진심을 내어준 사람에게 받은 톤 다운된 파란 마음이 아직 남아 있어서, 문득 지난날이 생각나면 아프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생기거나 손해 보는 느낌이 들면 ‘빈손’을 떠올린다. 온갖 수저의 색이 거론되는 세상이지만,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 일군 것이어야 온전한 나의 것이다. 부모님에게 받은 물질이 몸을 편하게 해 줄는지 몰라도, 내면까지는 아니다. 내면의 풍요는 스스로 일군 게 아니라면 불가하다고 믿는다. 여태까지 경험한바, 나는 그랬다.


 누구나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날은 빈손이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엔 빈손으로 간다. 빈손을 생각하면 가진 걸 내어주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된다. 내가 가진 게 선물같이 느껴져서 감사한 마음이 된다.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 진심에는 대가가 따른다. 충만함 일수도 있고, 아픔일 수도 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아픈 마음을 잘 다독여서 다시 마음을 내는 게 옳다고 여긴다.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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