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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ug 13. 2023

고통에 반대어, 감사

 아이가 방학을 맞이하면 매 끼니를 차려야 하기에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배적이다. 식사는 빨래나 바닥 청소처럼 미루어 둘 수도 없어서 손에 물 마를 새가 없다. 음식을 하다 보면 칼과 가위를 자주 사용하게 된다. 처음 요리를 할 때 칼과 가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름 칼과 가위를 조심성 있게 다루었다. 그런데 주부 12년 차가 되면서 점점 무뎌졌다.


 예기치 않은 사고는 방심할 때 찾아온다. 3일 전, 가위를 사용하다 왼쪽 넷째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웬만해선 밴드 하나 붙이고 다시 주방에 서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지혈이 안 되는 건지…. 베인 면적은 쌀 한 톨만큼이었지만, 살점이 너덜거릴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거즈로 손가락을 둘둘 말아 쥐고 몇십 분을 앉아 있었다. 약 30분가량 되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지혈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피가 새어 나오는 양이 조금 줄었을 뿐이었다.


 유튜브를 보고 있던 둘째가 심각성을 알아차리고는 달려왔다. “엄마, 괜찮아?”, 하고 말했다. 병원에 가서 두 어 방울이라도 꿰매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곁을 지키는 둘째에게, 괜찮다며 거즈를 손가락에 여러 번 두르고 밴드를 붙여 단단히 고정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의 세기로 밴드를 감아서 그 주변 색이 허옇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아이의 끼니는 챙겨야 하니 마저 요리를 이어갔다.


나의 귀여운 둘째, 우리는 매일 비닐장갑을 끼고 봉지 하나로 가득 찰 만큼의 쓰레기를 줍는다.


 정신없이 밥을 차리고 밴드를 떼어보니 피부가 불어 있었다. 다행히 더는 피가 나지 않았다. 손을 베었을 때 따끔하는 통증은 있었지만 놀라서인지 그렇게 아픈 줄은 몰랐다. 밥을 차리면서도 손가락을 움직일 때 뻐근함만이 전부였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아이의 끼니를 해결한 뒤에야 다친 부위의 욱신거림이 크게 느껴졌다. 그 통증이 타고 올라와 어깨까지 욱신거렸다.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주무르며 앉아 있는데, 둘째가 한 번 더 괜찮으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어떻게 하느냐며 야단을 떨어댔다. 둘째가 나를 그렇게나 걱정해 주는 건 처음이었다.


 둘째는 또래보다 발달이 느려, 2년째 놀이치료 중이다. 누군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아도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랬던 듯하다. 놀이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걸까? 나를 걱정해 주는 둘째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둘째가 마음을 써 준 덕분에 정말로 괜찮았다. 이보다 더 큰 사고가 났어도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감사함이 밀려왔다. 평소였더라면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며 부정적인 생각으로 종일 몸을 사리거나, 나의 부주의를 탓했을 텐데. 내가 아니라 우리 가족 누군가에게 이보다 더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이만하길 실로 다행이었다.


 손을 베이고 이틀간은 부기가 심했다. 통증도 더해졌다. 첫날밤에는 잠을 설칠 정도로 아팠다. 지금은 베인 부위가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었다. 살점이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아물고 있는 것 같다. 거즈를 대고 밴드를 두어 개 말아 붙이면 자판을 두드려도 괜찮다. 고통스러웠던 통증도 조금씩 가시고 있다.


아픈 손가락. 자판을 두드리면 피가 맺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만하길 다행^^ 휴~


 사람이 고통을 감각할 수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듯하다. 배를 주려본 사람은 한 끼 식사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안다. 불면증에 시달려본 사람은 잠들 수 있는 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안다. 난독증을 앓아본 사람은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안다. 신경이 눌려 하반신 마비를 겪어본 사람은 두 발을 딛고 몸을 지탱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안다. 이처럼 고통이 존재하는 건 그 반대의 감정과 감각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반대어는 쾌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고통에 반대어는 ‘감사’이다. 그간 살아오며 신체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모든 통증에는 고통이 따랐고, 고통 뒤에는 늘 감사함이 남았다. 감사한 마음이 된 순간에는 보이지 않던 일상의 일부가 있었다. 매일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숨 쉴 수 있는 것, 목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는 것,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것 등 모든 일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행해진 일들이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일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과 앞으로 마주할 모든 과정이 감사한 일이라는 걸, 짧고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배고픔, 불면증, 난독증, 하반신 신경 눌림, 그로 인한 마비증상은 과거의 내가 겪은 고통스러웠던 일들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하루는 매일 시작되고 저물어간다. 생의 유한함을 감각할 때 일상이 감사함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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