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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ug 22. 2023

너와의 만남이 늘 아쉽고, 고마워

 두 아이가 등굣길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만에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오전 8시 40분에 시작된 통화는 약 2시간을 넘겨서까지 이어졌다. 친구라고는 했지만, 나보다 2살 위인 언니이다. 1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해오다 보니 이제는 나이 차를 느끼지 못한다. 때로는 내가, 때로는 친구가 언니가 되었다가 동생이 되기도 한다. 친구도 나와 같이 느끼는 듯하다. 


 이 친구의 얼굴을 못 본 지 1년이 넘었다. 내가 책을 쓰고 독립 출판사를 오픈하는 일로 친구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두 아이를 챙겨가며 무언갈 한다는 건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지 못할 만큼 물리적. 심적으로 생활에 여유가 없는 일이었다. 잠을 줄이고 먹는 것도 대충 해결해 가며 꾸역꾸역 목표를 향해 달렸다. 그렇게 상반기가 훌쩍 지나버렸다. 


 6월까지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정신을 차려갈 즈음, 두 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와 중에도 문득 친구가 생각날 때면 핸드폰을 들었던 적이 여러 날이었다.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이내 그만두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통화가 길어질 것 같은데 10분 이상 시간을 낼 수 없어서였다. 올해는 새해 인사조차 전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여름방학을 마치면 마음이 한 짐 가벼워질 것이었다. 그때 친구와 통화를 하면 좋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야 나도 친구도 마음 편히 통화할 수 있을 테니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친구와의 비대면 조우가 오늘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인근 다른 학교보다 개학을 가장 늦게 해서, 당연히 친구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개학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친구의 목소리에는 아직 잠기운이 서려 있었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 갔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여태 잔다고 답했다. 아직 개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음에 다시 전화할까?”, 하는 나의 말에, 친구는 아이가 자고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느라 귀와 입이 바빴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의 삶이야 다들 비슷비슷하다. 우리는 사정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서로의 이야기를 기꺼이 경청했다. 우리의 대화는 만나든 만나지 않든 12년째 같은 식으로 흘러간다. 근황을 공유하고 속상했던 일 이야기 하기. 그리고 고민을 함께 나누고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머리 맞대기. 나는 친구에게 몇 년째 고민이나 걱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속 편히 살아서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고민과 걱정들 이어서였다.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고민과 걱정으로부터 벗어 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이 몹시 힘들다고 말했다. 친구는 놀란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염려했다. 실은, 엊그제 밤에 잠을 거의 청하지 못했다고 운을 띄우고 말을 이었다. 육아와 살림을 하며 읽고 쓰는 생활을 4년간 해오다 보니, 머리로는 빠삭하게 알아도 현실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와 대처 방법, 이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 이해관계를 성립할 수 없는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와 예방 안, 청년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 등등. 나는 이 모든 것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문제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지만, 사회와 단절된 채 글로만 모든 현상을 이해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사회로 뛰어들어 몸으로 부딪치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깨져 봐야 습득해 갈 수 있는 기술들이 있는 것이었다. 




 가정주부로 글을 써서 책을 펴내는 여성 작가들의 생활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래도 되나 싶어 두렵다. 글로는 청산유수인데 실제로는 아둔한 사람. 이렇게 나이 들어도 되는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움을 떨쳐낼 수가 없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더욱 두려움을 해소하지 못하는 데에 조바심이 나는 것도 있다. 


 친구는 작가 생활이라는 게 대부분 나와 상황이 같을 거라고 하며, 여유가 생기면 취미생활을 하길 권유했다. 그렇게 사회로 조금씩 나아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맞다. 친구의 말이 정답이다. 더 늦기 전에 사회로 나가고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가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나의 걱정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좋은 말인데, 좋지 않은 말도 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고도의 능력주의 사회가 되면서 경쟁도 한계치를 넘어섰다. 지금의 청년들은 어릴 적부터 시작된 경쟁과 능력 앞다투기에 이골이 났다. 아무리 다정한 조언일지라도, 조언은 쓰다. 스스로 문제를 자각한 뒤에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얼마든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쓴맛보다는 단맛이 나는 말이다. 이러한 걸 알고 있기에 좋은 말만을 하고, 좋은 글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며칠 전, 나는 애정 어린 마음이랍시고 쓰디쓴 조언을 해버렸다. 그게 갑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싶을 만큼이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지.”,라는 남편의 말에 아차 싶었다. 뒤늦게 후회하고는 죄송한 마음을 전했지만,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나로 인해 상대의 마음이 다쳤을 게 분명하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스스로 탓했다. 이렇게나 심하게 자책했던 적은 30대 두 번째이다. 




 친구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막말이라거나 갑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역시 친구는 주고받은 마음만큼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안정되는지 참 잘 알고 있다. 이 친구와의 대화는 주제와 상관없이 언제나 포근하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만, 마음을 감싸 안아주면 위안이 된다. 


 지인과 친구 사이에서도 치부를 드러내는 건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 사회에서 영악하고 사악한 사람에게 약점은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과 같다. 누구나 흠이 있지만, 흠을 들키면 매력도가 낮아져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나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안 좋은 면은 감추는 게 이롭다. 가족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스스로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크나큰 복인지. 나의 치부를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천운인지. 


 나는 어릴 적부터 친구가 거의 없이 성장해 왔다.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 앞에 설 때면 늘 주눅이 들었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나를 막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나에게 이 친구의 귀함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크다. 나는 유일하게 이 친구에게만큼은 굳건한 신뢰가 있다. 친구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힐난을 받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믿음이다. 또한, 우리가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은 그 공백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늘 언제고 마지막 모습과 감정 그대로 서로를 맞이해 줄 거라고. 나 역시 한 점 어색함 없이 그러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친구는 언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반가이 맞이해 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친구가 좋은 사람이다. 


 우리의 대화가 늘 같은 식으로 흘러가듯,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마지막 모습도 늘 같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여기까지여서 아쉽다는 말과 함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걸 서로 잊지 않는다. 


곰돌이 푸, 소중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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