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지금은 하루에도 메일함을 몇 번씩 확인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작가의 메일함에는 청탁이나 강연 문의가 오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출간작가 명찰을 단지 갓 일주일밖에 되지 않기도 했고, 출간 전에도 작가 활동은 혼자 글 쓰는 게 전부라 메일이 올 일이 없었다.
나에게 도착한 메일은 홍보에 관한 것이었다. 5만 원을 내면 책을 온라인에 홍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홍보는 작가와 출판사 모두 마음을 모아 하는 것이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싶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책을 출간한 후에도 같은 메일이 도착했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연락을 해 오는 게 신기해서 어떻게 알고 메일을 보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예스 24, 알라딘, 교보문고와 같은 온라인서점 신간 코너에 책이 올라오면 작가 이력을 확인하고 메일을 보낸다고 답했다.
그가 다른 저자의 신간을 홍보한 웹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책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미지수인 불특정 다수가 모인 플랫폼에 신간을 홍보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이번엔 5만 원을 지불하고 신간 홍보하겠다고 답했다. 홍보 효과로 책이 팔릴 것이라는 기대감은 없었다.
다만, 그의 노고가 눈에 선해 5만 원을 써도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매일 온라인서점에서 신간을 확인하고 일일이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보통 품이 드는 게 아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도 한 가정의 가장일지도 모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혼이어도 스스로를 벌어 먹이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우리나라는 청년 고독사율이 높은 편이며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는 5만 원의 값을 받고 약속대로 온라인 세상에 나의 책을 홍보해 주었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며칠 뒤 그에게 다시 메일이 왔다. 내 신간을 한 권 보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자신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며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책을 무료로 보내주면 온라인에 책을 조금 더 홍보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책을 읽어보고 싶다며 자신이 처한 사정을 말하는 예비 독자를 거절할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다. 나는 흔쾌히 그에게 책을 보냈다. 기왕 보내는 김에 두 번째 책과 함께 첫 번째 책도 같이. 두 권의 책값과 택배비는 3만 9천 원이었다. 우체국에서 책을 보내던 그날은 하늘이 참 투명했다. 맑은 하늘처럼 좋은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한 일주일 즈음 지난 듯했다. 그에게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책을 잘 받았다는 인사일 거라고 예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그런데 기쁨으로 차올랐던 마음에 찬물이 끼얹어진 기분이었다. 첫 번째 책에 띄어쓰기, 잘못된 부분을 찾아낸 문장과 함께 교정. 교열 경력을 말하며 외주를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낸 이유가 교정. 교열을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책을 잘 받았다는 인사말이 들어 있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건 아니었다. 그저 놀랍고 씁쓸했을 뿐이었다. 내가 쓴 마음이 그에게는 돈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씁쓸했고, 누군가 보내준 마음에서도 돈벌이를 찾아내는 시각을 가진 게 놀라웠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게 되면 그 과정에서 퇴고를 많이 한다. 작가들이 토가 나올 정도로 퇴고한다는 말이 대부분 출간과정에서 겪은 경험담이다. 편집장 (편집자)와 함께 작업하면서 교정. 교열을 충분히 본다. 교정. 교열. 윤문만을 십 수년간 전문적으로 하고 맞춤법 책을 펴낸 사람이 봤을 때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크게 잘 못 된 것은 없다. 그가 짚어낸 잘못된 문장은 ‘조사’가 문제였다. 조사의 쓰임을 말하는 것인데, 작가 중에는 - 지금처럼 (일) -부러 단어에 글자 하나를 빼거나 조사를 넣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읽는 맛을 살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어휘의 조합을 살피며 글자와 조사를 넣을지 말지 결정한다.
맞춤법 책을 펴낼 정도의 전문가에게 교정. 교열을 받으면 문장이 어떻게 될까. 군더더기 없음은 물론, 완벽한 문장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문체가 있다. 문체가 뚜렷한 글에는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아마, 그에게 교정. 교열 외주를 맡겼다면 문체 일부의 색이 지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고쳐야 한다고 나열한 문장들을 곱씹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라는 속담이 뇌리를 스쳐 갔다. 아직도 개구리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지금보다 더 미숙했던 시절의 나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양 볼이 화끈거렸다.
난독증을 극복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때가 있었다. 불과 3년 전이다. 나는 메일을 주고받은 그보다 더 배려라는 걸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배려를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배려랍시고 한 행동으로 인해 한심하게도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중 하나가 책을 읽고 나서 오탈자, 비문, 오문을 정리해 출판사 이메일로 보낸 일이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없었지만, 한 출판사에서는 감사의 의미로 문화상품권 5만 원을 보내주었다. 그 출판사는 종교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었다. 종교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어서 부족함과 부끄러움 모르는 못난 행동도 감싸 안아 준 것 같다.
어느 책이든 글을 쓸 줄 아는 작가가 집필하고, 어느 출판사든 편집장 (편집자)가 있다. 작가, 편집장 (편집자)를 포함해 출판 관련 종사자는 전문가이다. 한 권의 책은 여러 명의 수고로움으로 탄생한다. 전문가들이 합심해 만든 창작물이 잘 못 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내가 한 행동 역시 배려가 아니었다. 배려를 잘못 이해하고 저지른 만행일 뿐. 배려가 아닌 허세였다. 지난날 내가 부린 허세와 그에게 받은 씁쓸한 마음을 한데 모아 속죄했다.
속죄 속에서 하나의 배움이 마음속 메일함에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그 메일함에는 배려와 감사함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을 땐, 마음을 멈추어 세워야 한다. 그런 다음 하고자 하는 일이 배려가 맞는지 상대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감사한 마음을 받았을 땐, 다른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감사히 받을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저서와 글쓰기 수업 그리고 강연에서 문장력을 강조한 적이 있다. 읽는 이에게 잘 가닿기 위해서는 맞춤법, 띄어쓰기, 오문, 비문이 없는 완벽한 문장력을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내용이다. 내용이 읽는 이에게 이로워야 한다. 아무리 유려한 문장력을 가져도 내용이 별로면 글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