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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Oct 22. 2023

감수성이 짙은 사람

몇 해 전, 모교의 교수님께서 감수성에 대해 말씀했다. 내가 가진 감수성이 짙어서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감수성이 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곧 감수성이 짙은 게 왜 좋지 않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교수님에게 “감수성이 짙으면 왜 좋지 않은 걸까요?”, 하고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우울감에 관해 말씀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감수성이 짙어서 좋지 않다는 말은, 나에게 우울감이 짙게 묻어나서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그 당시 공허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어서였다.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숨 가쁘게 살다가 계획 없이 한가해지면 공허해진다.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되겠다는 여유는 잠시일 뿐 공허함을 따라 우울감도 찾아온다. 정확히는, 육아로 인한 우울감이 있었다. 그걸 모르고 살아온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굳이 우울증이라고 확정 짓고 싶지 않다. 사실, 우울증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단지, 아픈 마음은 삶에 허덕일 때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나의 우울감도 마찬가지였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서야 울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마음의 병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게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언젠가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독서, 수영, 글쓰기 등 각종 모임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공허함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짐작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삶에 안주하기보다는 발전하고 나아가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제자리걸음일지라도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데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으니 공허했던 것이었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시작했지만, 스스로 지탱하며 나아가기 위해 책과 글쓰기로 파고들었다. 글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몹시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엉덩이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만 같아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독서가 그렇게 눈물 나게 힘겨운 싸움이라는 걸 체감하면서도. 


 하지만 무언갈 하고 있을 땐 공허하지 않은데, 다시 혼자가 되면 마음이 텅 빈듯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드는 게 싫어서 종일 몸을 움직였다.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주방에서 요리하는 시간도 배로 늘어났다. 반찬을 넘치게 만들어서 결국 버리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할 정도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에 공허함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나의 감정을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의 마음에게 말했다. “너 지금 공허하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라고. 신기하게도 이 말을 하고 나서 마음 어딘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받아들임이었다. 




정목스님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 알고 말하기 시작한 게 불과 1만 년 전이라고 한다. 그 전의 인류는 마음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인간은 감정과 마음에 대해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되려 너무 많은 걸 알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현대인들의 똑똑함이 차고 넘쳐서 걱정이 많고 불안해하는 것을 말한다. 경험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마저도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재고 따질 게 많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듯, 우리에게는 삶에 도움이 되는 배움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말씀한 감수성은 우울감에 대한 것이었지만, 스스로 감수성이 짙다고 여긴다.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나는 종종 어느 찰나에도 감동하고 감사하게 된다. 나의 오늘에도 감동과 감사의 순간이 있었다. 시장을 보러 가던 중, 신호대기를 하며 올려다본 하늘이 눈물이 고일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눈을 가져서 감사하고, 늘 보던 하늘이라고 해도 찬란함과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 편으로, 오늘 나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싶어 유한하지 않은 생애가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이럴 때면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일이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그 하루도 지는 해와 같이 저물어 갈 것이기에, 오늘을 성실히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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