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간된 글

글을 못 쓴다는 시선

서러움

by 이수아

2019년 폭염이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의 초입이었다. 집에서 차로 30분가량 거리에 있는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한다고 했다. 어떠한 모임이든 일정한 금액을 내야 하는데 글쓰기 모임은 무료였다. 글쓰기 수업이 아니어서 자유롭게 글을 쓰면 되는 모임이었다.


강사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건 아니지만 서로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있을 듯했다. 무엇보다 비용이 들지 않고 자유로운 글쓰기가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님께서 언급하신 대로 해방된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모임에 들어갔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어떠한 글쓰기를 해왔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임 일원은 저마다 글쓰기 경험을 풀어놓았다. 기자 공부를 했던 사람, 10년 넘게 일기를 써온 사람, 어느 협회에 칼럼을 연재했던 사람 등 다양했다. 나는 그동안 글이라고는 써본 기억이 없어서 이제부터 글을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혼 후 블로그에 체험 리뷰와 업체 홍보 원고를 쓰기도 했었는데, 당시에는 나의 이야기가 들어간 글이 아니어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게다가 블로그에 썼던 글은 완성된 문장이 거의 없었다. 문장보다는 단어의 배열이라고 해야 옳다. 이러한 이유로 체험 리뷰와 홍보 원고가 글쓰기라고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글을 쓸지 의견을 나누었다. 누군가는 주제 글쓰기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독서 리뷰를, 어떠한 곳에 자주 가는 사람은 장소 리뷰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를 쓰자고 했다. 나는 아무 의견도 내지 않았지만,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매주 마감 날을 정해 한 편씩 글을 써서 카카오톡으로 공유했다. 한 편의 글 분량은 A4 반장이었다. 지금 여기까지 쓴 글이 딱 그 분량이다. 처음 글쓰기를 해 보는 거라 한 줄을 쓰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한 줄 써 놓고 종일 다음 문장을 쓰지 못한 날도 많았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면 매일 하루 서 너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간신히 몇 문장 써 놓고도 다음날이 되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쓴 글을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고 나서 다른 일원의 글을 읽어보았다.


매번 나의 글이 다른 일원에 비해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어느 부분이 미흡한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글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에도 수준 차이가 느껴졌다. 그 이유를 생각하다 ‘문장력’을 떠올렸다. 매끄러운 문장을 쓰기 위해 책을 뒤적였다. 내가 쓴 문장과 책에 쓰인 문장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하면 문장이 부드러워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 문장의 단어를 요리조리 재배열했다. 그중 소리 내 읽었을 때 가장 잘 읽히는 문장을 골랐다. 일주일에 한 번은 책방에서 만나 한 주동안 글 쓰며 느낀 소감을 이야기했다. A는 나에게 “점을 여섯 개 찍어야지 세 개만 찍으면 안 돼요.”하고 말했다. 왜 여섯 개를 찍어야 하느냐고 묻자, “글 쓸 때 점 여섯 개가 기본이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글쓰기에도 기본이 되는 법칙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 뒤로 한동안 점 여섯 개를 찍었다.




삼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A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


“글쓰기에 기본이 되는 틀은 없어요.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됩니다.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이라면 어떠한 글도 괜찮아요. 점은 꼭 몇 개를 찍어야 한다는 법칙도 없어요. 대게 세 개에서 여섯 개를 많이 사용하지만 두 개를 찍는다 한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책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번 주에는 누구의 글이 좋았다는 말이 나왔다. 나의 글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말할 때 누군가 내쉬었던 한숨 소리는 아직도 선명하다. 그 한숨을 그대로 들이 마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글을 써보는 사람과 글쓰기를 지속해온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나.


삼 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글이라는 것도 하나의 기술을 익히듯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이라는 전제하에 이 정도면 잘 썼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수년 혹은 수 십 년을 들여 많은 시간을 써온 사람과 견줄 수는 없다. 사실 “저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요.” 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않아서 무어라 단언할 수 없지만,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많이 써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여긴다.




나는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가질 때면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이만큼 하는 것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해요”하고 말하면 그만인데, 성격상 그러한 넉살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계속해서 쓰는 일이었다.


움츠러들다 못해 쪼그라들었던 어느 날, 정말이지 어디 가서도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글쟁이라는 소리를 꼭 들을 거야, 하는 마음이 된 것이었다. 육아, 밥 차리기, 빨래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육아의 비중이 커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싱크대에는 세 끼 먹은 설거지를 쌓아 놓은 채 글을 썼다. 글부터 쓰고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설거지를 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도 글쓰기 실력은 한순간 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제 자리 걸음인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컴퓨터 앞에 엎어져 어깨를 들썩이며 설움을 토해내었다. 학창 시절에 일기도 안 쓰고 뭐했나, 싶어 지난날을 탓하기도 했다. 자책, 후회는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은 계속 엉망이다.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있고, 바닥청소를 못하는 날이 더 많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화장실 청소를 못 해, 최근 변기 내부를 자동 세척해주는 기능이 달린 비데를 설치했다.


삼 년을 엉덩이에 쥐가 날 때까지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주말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밤을 꼬박 새워 쓰고 지우길 반복했다. 한글 파일로 10장을 쓰면 건질 수 있는 글은 2~3장 정도였다. 휴지통에 버린 글만 해도 200장 책 두 권은 될 것이다. 버리지 말고 나중에 살리라고 조언해 주는 분도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살릴 수 없는 맥락이었다. 휴지통으로 갈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자리를 알아보다 한 회사를 만났다. 원고 작업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샘플로 그간 써 놓은 글 몇 편을 보냈다. 회사 담당자는 “글 쓴 지 몇 년이 되었어요?”하고 물었다. 나는 삼 년이 되었다고 답했다. 그는 삼 년 만에 이 정도로 글을 쓸 수 있는지 놀랐다는 말과 함께 계약서를 보내왔다.


계약사항을 살펴보던 중 회사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 내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급여, 재택근무의 조건이 마음에 들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약을 하지 않았다. 내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건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년 간 시, 소설, 에세이, 소설 합평과 같은 다양한 글쓰기 수업을 들어왔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은 글쓰기는 배워지는 것인가, 하는 물음표다.




가장 글쓰기 실력이 늘었던 시기를 떠올려 보면 배울 때보다 혼자 숱한 밤을 글쓰기와 보냈던 나날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글을 많이 써본 후 글쓰기 수업을 들었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해 주고 싶다. 수업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게 어떨까 싶어서이다. 글쓰기 강사마다 가르치는 방식과 주관적인 피드백이 작용하므로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지난날 글을 못 써서 느낀 서러움 덕분이다. 서러움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을 낳았다. 글 쓰다 지칠 때도 다시 힘을 내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 서러움도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오로지 나의 몫이므로 그러하다. 누군가 서러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타인은 그 상황에 존재했을 뿐이다. 사람을 미워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더 힘들게만 만든다.


감정이 나의 몫이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러운 마음에 여러 번 울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눈물 짜고 있을 시간에 한 문장이라도 더 쓰는 편이 낫다. 씻어낼 수 있는 서러움이라면 원인을 해결하면 그만이다.




누가 나에게 글을 못 쓴다고 말해도, 나의 글을 읽고 한숨 쉬어도, 이제는 서럽지 않다. 오히려 지난날 서러운 감정이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 마음이 평온했다면 맹렬한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일로 서러움이 밀려와도 힘들지 않게 맞이할 수 있을 듯하다. 그간 해왔던 대로 서러움을 밑거름 삼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걸 알기에. 말은 쉽지만 행하는 건 어렵다. 한번 해 보았으니 두 번째에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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