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동춘마을을 포함해 근처 어촌계가 있던 4개의 마을 사람들이 진정서를 넣고 농성을 벌였다. 눈물로 호소해도 갯벌 매립은 시작되었다. 갯벌이 매립되고 새로운 도시가 건설될 거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와 고모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그것을 조개 딱지라고 불렀다. 조개 딱지를 사려고 마을에 정장 입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갯벌을 매립하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다. 어촌계의 돈줄이 막혔으니 그 대가로 조개 딱지를 준 것이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은 조개 딱지를 천만 원에서, 많게는 삼천만 원까지 주고 사 갔다. 고모뿐 아니라 서로 앞다투어 조개 딱지를 팔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팔지 않았고 아버지 손에 쥐여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갯벌에 못 나가게 되었지만, 갯벌이 생활 터전이던 사람들의 몸에는 여전히 짠내가 났다. 할머니에게도 깊이 배인 갯벌의 냄새는 아무리 옷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옷과 가족의 옷을 한데 모아 빨래를 해서 내 옷에도 짠내가 났다.
그 냄새는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승희와 6학년 때 한 반이 되었다. 그 친구의 혀에는 독이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내 앞을 지날 때마다 코를 틀어막았다.
아파트에 사는 승희 얼굴은 늘 빛났고, 옷에서는 향기가 났다. 날 놀릴 때마다 부끄러웠고 친구가 부러웠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집어삼킬 듯한 뻘처럼, 부끄러움과 친구를 향한 부러움은 날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차에 태웠다. 차를 타고 바다 위로 뻗은 긴 다리를 건너 허허벌판을 지나자 하늘로 치솟은 건물이 보였다.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높이였다. 아버지는 그중에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개 딱지를 이 아파트와 바꿨다. 저 맨 꼭대기 보이지? 저기가 우리 집이다.”
할머니의 땅 갯벌이 매립되고 그 위에 송도 국제 신도시가 세워졌다. 웅장한 도시 속 아파트는 나에게 배어있는 갯벌의 냄새를 당장이라도 지워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리 좋은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의 가슴 저 밑엔 갯벌이 있었을 것이다. 갯벌 위로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할머니 가슴에도 물살이 들어찼을 것이다. 할머니는 바지락 캐고 살던 삶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까지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았다.
뱃속에 첫 아이를 품은 지 8개월 때, 할머니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이가 두 돌을 맞이하던 날, 남편과 아이를 안고 바다에 갔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자 아련하고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뚫려있는 모든 감각을 타고 파고들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무엇엔가 홀린 듯 갯벌로 걸어 들어갔다. 뽀글거리는 구멍을 맨손으로 파헤쳤다. 작은 게는 줄행랑쳤고 조각난 조개껍질은 손에 상흔을 남겼다. 잿빛에 감춰진 검은흙에서는 진한 갯벌의 냄새가 났다. 나에게서 지워진 줄 알았던 그 냄새는 그대로였다. 갯벌이 품은 냄새는 할머니와 나의 냄새이다.
둘째가 세 살이 되던 해, 남편이 송도에 가자고 했다. 보트를 타러 가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작은 전동 보트에 올랐다. 강처럼 보이는 호수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미간이 저릿했다.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갯벌의 냄새가 났다. 나와 할머니의 냄새는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6월이 되면 종종 갯벌에 간다. 아이들 손에 장갑을 끼우고 장화를 신긴다. 한 손은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에는 호미 한 자루를 쥔다. 아이와 함께 갯벌에 발을 딛는다.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이 앞걸음을 포개며 할머니 땅을 걷는다.
갯벌의 냄새를 안고 불어오는 6월의 바람은 할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짠 기운으로 눅눅해진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리면 고개를 들어 숨을 들이마신다. 깊숙한 곳까지 할머니 냄새로 가득 채운다.
화려함과 웅장함 뒤에 가려진 어촌 사람들의 소박한 삶과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촌집에 사는 게 부끄럽고 자꾸만 냄새가 난다는 친구의 말에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그 시절이 아득히 멀어져 간다.
*
https://brunch.co.kr/@a814561ae70f444/44
짠 기운으로 눅눅해진, 할머니 냄새 - 1부
짠 기운으로 눅눅해진, 할머니 냄새 -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