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85년도에는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맏딸은 재산 밑천이라는 낡은 사고방식이 있었고, 아들을 못 낳은 여성은 시댁의 눈치를 받아야 했다. 어머니는 일 년 차이로 언니와 나를 낳았다.
나의 탄생을 축복해 준 건 외할머니뿐이었다. 내리 딸 둘을 낳은 어머니는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따라 일터로 나가 가정주부에서 일하는 여성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날 나무랐다. 언니와 다툰다고, 한글을 빨리 못 깨친다고, 계집아이의 목소리가 집 밖을 나서면 안 된다며 회초리를 드셨다.
“어서 남동생을 봐야지. 네가 남자로 살면 남동생을 볼 수 있어.”
그 시절, 할아버지는 손주를 보기 위해 여아를 남아로 둔갑시키는 미신을 믿었다. 나는 머리가 짧았고 사내아이 옷을 입었다. 유치원복, 평상복, 한복을 입을 때에도 남아 옷을 입었다. 긴 머리에 치마를 입고 에나멜 구두를 신은 언니의 모습은 어린 내 눈에는 천사처럼 예뻤다. 나도 예쁜 걸 좋아했다. 그러나 손에 예쁨을 쥘 수는 없었다. 아무도 몰래 한 번씩 언니의 물건을 만지다가 할아버지에게 들키면 꾸중을 들었다.
어느 날에는 옷을 벗고 안방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석구석 살폈다. 언니와 같은 몸을 가졌으니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했다.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왜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남자가 되고 싶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할 즈음, 아들을 낳기 위해 어머니는 노력하셨다. 사내아이를 낳은 여성의 속옷을 가져다 입고, 제주도에 가서 돌하르방의 코를 깎은 가루를 물에 개어 마시며 아들을 소원하셨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가을, 우리 집 대문에는 고추와 솔잎 가지를 엮은 금줄이 걸렸다. 드디어 온 가족이 바라는 남동생이 태어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남동생의 탄생을 축복해 주기 위해 줄을 이었다. 마당에는 천막이 쳐지고 갖가지 음식이 차려졌다. 모두가 웃고 떠들고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잔치를 했다. 뜨겁지 않은 해와 선선한 가을바람은 아침부터 늦저녁까지 잔치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어른들이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어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나에게 하얀색 공단 원피스를 입히고 에나멜 구두를 신겨 주었다. 양쪽 어깨가 크게 부풀어 있고 치마엔 진주 같은 구슬이 알알이 박혀 있는 순백의 드레스였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뒷산에 올랐다.
도토리나무 아래에 떨어진 나뭇잎을 하늘 위로 날리며 놀았고 어머니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한참 놀다 보니 어머니의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 어머니는 내 짧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이름을 불렀다. 내 머리가 귀밑까지 자라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사내아이에서 어린 소녀가 되어갔다. 할아버지의 꾸중도 줄어들었다.
딸 둘을 낳고 받은 어머니의 설움이 아들을 낳고 씻겨 내렸을까,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실 때마다 벽 뒤에 서서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던 어린 나는 어머니의 설움을 고스란히 받아내었다.
결혼하고 첫째가 태어나던 날과 둘째가 태어나던 날, 손수 금줄을 사다 걸었다. 아직도 아들을 소원하는 집이 있다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남아선호 사상은 내가 태어나던 80년대처럼 만연하지 않다. 두 명의 아들을 낳고 금줄을 건 이유는 날 위해였다. 그것을 걸면서 솟아오르는 눈물을 금줄 앞에서 하염없이 쏟아내었다. 바닥에 얼굴을 묻고 밀려오는 설움을 참지 않았다.
뱃속에 품은 아이의 성별을 바꾸기 위해 한약을 지어먹고 굿판을 벌이는 건 부질없다.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성별을 인력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삼신이 점지해준 대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별에 따라 여자와 남자로 나뉘지만, 속으로 낳은 뿌리는 한 줄기이다.
여아를 남아로 둔갑시켜 키운다고 해도 타고난 본성은 바꿀 수 없다. 여자로 태어났어도 남자의 기질이 있고 남자로 태어났어도 여자의 기질을 보일 수 있는 게 그 사람이 타고나는 본성이다. 여자로 태어나 사내아이로 살던 시절부터 나는 예쁜 걸 좋아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게 좋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날이면 가정주부라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공들여 화장한다. 육아에 치여 살다 보니 화장품 유통기한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유통기한을 넘긴 화장품을 바르더라도 나를 가장 예쁘게 꾸민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모습을 눈에 담는다.
둘째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고 출생신고도 제때 하지 못했다. 빼어날 ‘秀’ 아이 ‘兒’. ‘수아’라는 이름에는 ‘빼어난 아이로 자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 빼어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