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형식 에세이

<4가지 형식의 에세이>

by 이수아

<4가지 형식의 에세이>

나만의 작법을 구사하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들던 날이었다. 여러 글쓰기의 구조를 에세이로 가져올 때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했고 나름의 방식을 찾았다. 지금부터 설명할 4가지 유형의 에세이는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진술 형식 에세이와 사유 형식 에세이는 기존에 있는 작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대개 진술하듯 있는 그대로를 쓴다. 진술 형식과 사유 형식 에세이의 차이점은 경험(에피소드)와 사유의 비율이다. 4가지 유형의 에세이를 읽은 누군가가 새로운 형식의 에세이를 재창조해 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담는다.




1. 소설 형식 에세이


소설에는 배경, 인물, 사건이 있다. 소설 형식을 에세이에 적용시킬 때는 배경, 인물, 사건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는 삶을 쓰는 것이어서 그저 쓰면 된다. 다만 묘사(인물, 풍경, 사물, 심리, 정황)에 중점을 두고 쓴다. 묘사를 길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 두 문장이면 충분하다. 소설 형식을 에세이에 담을 때 묘사와 진술이 함께 가야 한다. 묘사와 진술이 얼마나 잘 얽혀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화체를 문장 안에 넣어도 되지만 소설 형식을 뚜렷하게 담아내기 위해 대화체를 단독으로 쓴다.




제목 : 특별한 하룻밤

“나도 조용히 책 좀 읽고 싶어.”


올해 들어 독서를 시작한 남편은 책만 펴면 첫째와 둘째가 놀아달라는 통에 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어떻게 하면 책을 마음껏 읽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남편과 한 번도 북스테이를 가보지 않아서 책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북스테이를 검색했다. 집 근처 시골책방에서 두 달 동안만 북스테이를 운영한다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 없이 책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실컷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 예약부터 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애들 내가 볼 테니까 북스테이 다녀와. 내가 예약했어.”


남편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혼자서는 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어머니에게 전화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혹시, 이번 주말에 일 있으세요?”

“별다른 건 없는데 왜 그러는데.”

“애들 아빠랑 책방에 다녀오고 싶어서요. 주영이랑 효준이 어머니 댁에 보내도 될까요…?”




5월의 어느 날 아이들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남편과 집 근처에 있는 시골책방으로 갔다. 차를 타고 책방 입구로 들어서자 눈앞에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한쪽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어디에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책방 마당 오른편에는 작은 냇가가 있었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비추어진 냇물은 참 맑고 투명했다.


시골책방이라고 하기엔 건물이 웅장했다. 손가락으로 층수를 세어보니 4층이었다. 찬찬히 둘러보았더니 1층은 책방과 카페였다. 책방지기님께서 건물을 함께 둘러보자고 했다. 2층은 책방을 운영하는 부부의 살림집이고, 3층은 방 4개와 아담한 거실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사물) 이곳이 남편과 내가 머물 곳이라고 했다. 3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올라갔다. 4층에는 홈시어터와 빔프로젝트가 있었다. 원하면 영화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꿈에서라도 그려보지 못하는 환상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1층 북카페로 내려갔다. 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하고 남편과 마주 앉았다. 커피 마실 기회는 종종 있지만 평소에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기운이 감돌았다. 남편은 워낙 말수가 없는 편이다. 연애할 때는 말이 많더니 결혼하고 나서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신혼 초에 자주 다투곤 했었다. 잦은 다툼 끝에 웃기면서도 슬픈 말을 듣게 되었다. 결혼 전 남편은 내 마음을 사려고 일부러 말을 많이 한 거라고 했다.




그런 그가 마법에라도 걸린 듯 시골책방 북카페에서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들었다. 유년 시절과 첫 사회생활 이야기 그리고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회사생활을 구구절절 말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느라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책방지기님께서 6시 즈음 북카페 문을 닫는다며 마당에 모닥불을 지펴줄 수 있다고 했다.


“모닥불이라니 너무 좋아요. 저희 아직 저녁을 안 먹어서요. 근처에서 사 먹을 생각인데 다녀와서 불 지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책방지기님께 오후 8시까지 책방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고, 그는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남편은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을지 물었다.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스테이크 먹었잖아. 그때처럼 스테이크 어때?”


남편은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근처에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 있는지 검색했다. 다행히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파스타 가게에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10년 전 처음 만난 그날처럼 스테이크와 와인 두 잔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남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연애 시절을 추억하며 이야기할 땐 남편이 내 손 등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과 눈빛은 따뜻하고 애틋했다. 선천성 외사시로 태어난 둘째가 수술하던 날과 시골로 이사하며 고생하던 날을 이야기 할 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기가 좋습니다. 특별한 날인가요? 와인은 가득 따라 드릴게요.”


레스토랑 사장님께서 잔이 찰랑거릴 정도로 와인을 가득 따라주셨다.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남편이 만원을 꺼내 들며 말했다.


“우리 만원의 행복 누릴까?”


시골책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만원으로 4개의 캔맥주를 샀다. 책방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는 사방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시골이어서 도시보다 빨리 어두워진 듯했다. 마당에 있는 수돗가 옆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남편은 모닥불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이런 날 빠지면 안 되는 게 음악이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신효범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노래를 틀고 말했다.


“서로에게 끌림은 있었지만 우리는 사랑보다는 조건을 먼저 보고 결혼했잖아. 나는 이 노래처럼 결국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남편은 캔맥주를 마시며 또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고 나는 그의 말이 끝나갈 즈음 술과 흥에 취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닥불이 꺼져 서야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에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다음 날 나는 동이 터오기도 전에 일어나 혼자 책방 마당을 걸었다. 오늘이 퇴실이어서 조금이라도 더 책방 풍경을 만끽하고 싶었다. 소나무 숲을 걷다 보니 꽃향기가 났다. 어디서 나는 향기 인지 주위를 둘러보니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나무가 보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흰 꽃을 바라보며 한참 꽃나무 아래 서 있었다. 5월의 새벽 공기와 소나무 숲의 청량한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꽃내음으로 황홀했다. 책방지기님께서 정성껏 준비해주신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다.


남편에게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북스테이를 신청한 거였는데 우리의 시간은 진솔한 대화로 채워졌다. 시골책방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했다. 그간 듣고 싶었던 남편의 속마음을 1박 2일 동안 들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들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못 읽었지만 북스테이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인 값을 넘어섰다.


부모님께서 밤낮으로 일을 하셔서 육아가 버거워도 친정에는 기댈 수 없다. 아이들에게 치여 심신이 몹시 지치면 시댁에 맡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그럴 때면 왜인지 마음이 불편했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죄책감이 먼저 들었다. ‘아이를 낳았으니 힘들어도 감내해야지. 맡기긴 어딜 맡겨!’라고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와 꾸역꾸역 육아의 시간을 버텨낸 나날이었다.


말은 안 해도 내가 지치고 힘든 만큼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편은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아이를 낳은 후로 우리는 제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었다. 몸이 힘들면 말할 힘도 들을 힘도 나지 않는다. 어른에게도 일탈이 필요하다. 육아라는 일상을 벗어나 시골책방에서 보낸 하룻밤 이후로 남편은 말수가 늘었고 애정 표현은 더 과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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