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by 이수아

한 달 전, 이금희 아나운서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우리, 편하게 말해요》 책을 출간한 그는 영상 속에서 모국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가 된 이후 우리의 만남은 비대면의 비중이 커졌다. 그로 인해 일상적인 대화도 메신저나 SNS를 통해 텍스트로 주고받는 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모국어를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국어를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만약 나도 그러한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에이, 아무리 말을 적게 해도 그렇지. 설마 모국어를 잃어버리겠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매일같이 사용해온 한국말이 잘 기억나지 않았던 건 2021년 가을로 접어든 시기였다. 날이 갈수록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일이 어려워졌고 낯선 장소에서 심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인가부터 집안에서만 지냈다. 그 기간이 일 년 남짓이다.


집 밖을 나서는 일이 두려워진 건 그해 봄의 어느 날부터 몇 번이나 길을 잃어버린 뒤였다. 몇 번이나 낯선 길목에서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재탐색할 때마다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맺혔다.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가 혼동되어서 잘못 밟기도 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게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사회 불안증이라고 했다. 사회 불안증은 사회적 관계에서 두려움을 느껴 피하게 되며, 자기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증상을 말한다.


당황해하는 나와는 달리 의사 선생님은 코로나19 창궐 이후 우울증과 불안증 그리고 대인기피증 환자가 늘었다며 별일 아닌 듯 이야기하셨다. 나는 “갑자기 왜 이런 증상이 생긴 걸까요?”라고 재차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찾기보다 증상 완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러 매체를 검색해보고 나서 짐작한 건 사회 불안증의 발현은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듯했다. 그간 받아온 상처로 내상을 입은 사람 중에는 좋지 않은 일을 겪고 나서 사회 불안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병이 찾아온 게 아니라 내면에 잠자고 있던 트라우마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건드려진 듯하다.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먹으면 온 세상의 근심 걱정 없는 사람처럼 평안했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 약효가 떨어지면 불안감에 어쩔 줄 몰랐다. 약 먹을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먹는 날이 늘어나면서 점점 약에 의존해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음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과 상의 후 약을 줄여가며 심리상담을 병행하기로 했다.


약에 손을 대고 싶은 매 순간순간 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렸다. 봄과 여름을 지나는 동안 나의 대화는 늘 백지장 위에 쏟아내는 독백이었다. 하도 말을 안 하고 지내서인지 오랜만에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자꾸만 버벅거렸다. 부끄러움에 멋쩍어진 나는 “말이 퇴행했나? 오늘따라 말을 왜 이렇게 못 하지?”라는 말을 건넸고, 친구는 나를 안심시켜주려고 기분 탓일 거라고 답했다.


사회 불안증으로 집 밖을 나서기 두려워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유일한 소통 창구는 ZOOM수업과 SNS였다. ZOOM수업에서 무언갈 말해야 할 차례가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간신히 입을 열었는데 말하려고 했던 단어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간 받아온 글쓰기 수업의 영향도 있지만 그때부터였던 듯하다. 나의 언어 습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어투에서 자주 사용하는 어휘는 ‘~인 것 같다’, ‘~ 때문이다’, ‘~생각한다’ 등이었고, 글투에서는 ‘그럼에도’였다. 모국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핸드폰으로 글을 낭독해 녹음했다. 어투는 글투에 녹아든다. 말할 땐 몰랐는데 글로 옮겨진 나의 어투는 어딘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간 에세이 쓰기 수업을 통해 배운 건 문장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 그리고 글을 둥글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글로 옮길 땐 다르게 바꿔 표현한다.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어휘를 조금은 더 자신감 있게 표현>

‘~인 것 같다’ -> ‘~인 듯하다’

예) 난 행복할 때 불안감이 높아지는 듯하다.


<문장에 대한 책임감 회피로 보이는 어휘에 대한 책임감 있게 표현>

‘~생각한다’ -> ‘~여긴다’

예) 나와 내 삶을 소중히 여긴다.


<된 발음 소리로 인한 어감이 다소 세게 느껴지는 어휘를 둥글게 표현>

‘~ 때문이다’ -> ‘~여서이다’

예) J가 불만을 터뜨린 건 내 의견과 충돌해서이다.




사회 불안증은 완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과 낯선 장소와 계속해서 부딪힐 수밖에. 올해 봄부터 집 밖을 나서기로 했다. ZOOM으로 이어온 시 수업과 유선으로 받아온 심리상담을 오프라인으로 전향하고 에세이 쓰기 수업도 시작했다. 매주 3번은 누군가와 만나며 조금씩 사람들 틈에서 적응해 나갔다.


세상에 발돋움하며 용기를 내어 3달 전에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출간은 강연으로 이어져 중학생 18명 앞에서 특강도 했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하도 걱정되어서 일주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불안이 엄습해 올 때마다 거울 앞에 서서 말하는 연습을 거듭했다. 강연을 특출 나게 잘하진 못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무언갈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작년보다 분명히 어딘가 달라졌고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앞 문장과 맞서듯 반전을 예고하는 뒷 문장 사이에 들어가는 접속사와 부사 중에 ‘그럼에도’라는 부사를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나의 삶은 순탄했던 때보다 그렇지 않았던 적이 많아서이고, 두 번째는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부터 내가 가진 생각과 그 깊이가 점점 달라지고 있어서이다.


글쓰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건 좋은 사람이 되고 삶을 밝은 곳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었다. 문장에서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 어떠한 일도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것,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렇게 삶을 당당히 마주하고 나를 지켜내는 방법을 배웠다. 앞으로 다시 어둠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밝은 빛을 찾아 그 길을 향해 걸어 나가려고 안간힘 쓸 것이다. 독서와 글쓰기가 가르쳐 준 그대로. 그간 살아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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