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쓰는 글이 길이고 답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
새해가 밝아오고 열흘이 지났다. 엊그제부터 K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 4기가 시작되었다. 이전 기수를 함께 했던 두 분의 얼굴을 보고는 흐뭇했다. K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이전에도 3년간 글쓰기 모임이나 수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간 만나온 수강생분들이 100명은 더 되는 듯하다.
나도 어느 작가님의 수업은 2기까지만 하고 그만둔 적이 있지만, 다음번 기수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괜스레 마음 어딘가가 쓸쓸하다. 출간 작가를 꿈꾸던 적지 않은 벗들이 출간을 포기하면서 글쓰기를 그만두기도 했고, 몇 명의 벗은 애를 써서 단행본을 손에 쥔 뒤에 더는 이 고생을 못 할 것 같다며 혹은 더 쓸 말이 없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당시의 나는 절필이라는 단어가 가당치도 않을 만큼 글을 오래 써왔다거나 다작을 한 게 아니어서 “그렇게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이 말 한마디를 전하며 여러 감정이 뒤섞여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게 옳지만, 앞으로 함께 글을 못 쓴다는 사실과 나의 글 벗이 멀어져 가는 듯해, 아쉽고 슬프다는 말이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다. 착잡함은 나보다 그들이 더할 것이기에.
그 뒤로도 우리는 글쓰기와 상관없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글쓰기에 관해서는 전처럼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말을 아끼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연락이 닿을 때마다 묻곤 한다. 너 아직도 글 쓰냐고. 그럼 나는 “응”이라고 짧게 답한다. 누군가는 “수아는 계속 쓸 줄 알았어.”하고 말하며 부럽다고 했었다. 부러우면 당장 오늘부터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라고, 내 욕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쓰라고, 대차게 말하고 싶었는데 바보같이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잘 모르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그만뒀으면서 뭐가 부러우냐고. 하지만 나는 그가 백번 이해가 되어서 마음이 아프다. 글을 쓰고 싶어서 언젠가 열렬히 무언갈 썼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도 손에 쥐어보고 나서, 글을 쓰고 싶어도 더는 쓸 엄두가 나질 않는 상태. 물어본 적도 없고 어느 책에서 읽어 본 적도 없지만, 아마 이 세계의 모든 작가는 이러한 상태를 경험해 보았고 넘어섰기에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나도 경험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한 명의 수강생은 내가 수업에 나올 줄 몰랐다고 했다. 4기 커리큘럼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고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어서 이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있다. 글을 쓰고 싶어도 더는 쓸 엄두가 나질 않는 상태를 넘어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으니까.
3기까지만 해도 잘 쓴 글을 보여주고 K 선생님께 칭찬을 듬뿍 받고 싶었다. 그간 해왔던 글쓰기 수업에서 지적을 하도 받다보니 칭찬이 고팠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도 좋고 자신감이 붙는다. 그러나 지적을 받아야 부족한 게 보이고 발전할 수 있으니 어떠한 피드백이든 그저 감사히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임해야겠다. 이번 기수에서 나는 특이한 글을 쓸 듯하다. 나에게는 특이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특이해 보이는 글.
호랑이 같았던 어느 작가님께서는 언젠가 나의 글을 읽으시고는 “이런 걸 글이라고. 잘하다가 갑자기 왜 이런 걸 썼어요? 글 이렇게 쓰면 안 되지. 평소대로 다시 써와요.”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작가님께서 에세이를 맛있게 쓰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던 건데. 나는 아직도 그 실망스러운 얼굴을 잊지 못한다. 또다시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얼굴을 마주한다고 해도 잠시 놀라긴 하겠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걸 시도했다는 자체를 스스로 잘했다고 여기니까.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실패하다 보면 언젠가는 결국 나만의 독창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에세이가 쓰기 쉬운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에게는 어떠한 장르보다도 에세이가 가장 쓰기 어렵다. 에세이는 딱히 어떠한 형식이나 틀이 없다. 작년에 소설 합평을 이끌어 주신 K.Y 작가님께서 신인문학상과 젊은 작가상을 받은 소설가 한 분을 초대해 주셨었다. 그 소설가는 자신이 이번에 새로운 작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며 대화체로만 쓰인 단편소설 하나를 소개했다. 나는 대화체로만 된 소설은 처음 보아서 토끼 눈이 되어버렸지만, 정말이지 신선했다. 그때, 나도 어떠한 식으로든 신선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되었다.
이번 과제는 자유로운 주제로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나름 신선하게 글을 써 보았다. 어떠한 평가도 받을 준비가 되었다. 글쓰기는 인생과 같아서 정답이 없다. 당신이 쓴 글이 길이고 답이다. 그러니 고비의 순간 포기보다는 어떻게 잘 넘어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아직 남아 있다면 헤매더라도 방법은 찾을 수 있다. 글쓰기를 지속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오직 하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