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을 찾아서

by 최원돈

찔레꽃을 찾아서

최원돈


유월, 연휴의 길은 멀고도 더뎠다.

아침 여덟 시, 이른 햇살을 벗 삼아 집을 나섰건만, 수원에서 누님 내외를 모시고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차들은 가다 서다 반복했다. 도로는 마치 숨 고르듯 숨을 멈췄다가 겨우 움직이기를 반복했고, 우리는 결국 고덕 아우에게 연락해 여주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목적지에 다다른 시간은 어느새 오후 한 시. 늦은 점심을 나누고, 다시 부산 아우에게 연락해 고향 옻골마을에서 만나자 약속했다.


고속도로의 느림을 견디지 못해 국도로 빠져나왔지만, 그 길 역시 거북이걸음이다. 서울을 떠난 지 무려 여덟 시간 반 만에야 고향 땅, 옻골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다림 끝에 만난 우리 다섯 남매의 얼굴엔 피로 대신 반가움이 가득했다.


지난 3월, 대전 4촌 누이의 결혼식 때 우리는 찔레꽃이 필 무렵 다시 모이자고 약속했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형제지만, 형제 계를 만들어 때때로 만나고, 함께 여행도 하고, 식사도 한다. 이번엔 모두 고향에 모여 부모님 산소를 찾고, 외가에도 들러 찔레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워두고, 서산 자락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향해 걸었다. 유월 초순, 풀들은 이미 무성히 자라 길을 삼킬 듯했고, 나는 앞장서서 풀숲을 헤치며 20여 분을 걸었다. 멀리 산등성이에 부모님의 산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은 잔디가 듬성듬성했지만, 두 달 전 아내와 함께 산소를 다녀간 이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준비해 온 주과포를 진설하고, 맑은 청주 한 잔을 올렸다. 모두가 정성스레 배례를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지난 한식날 산역을 마친 후 저희 다섯 남매가 다시 이렇게 모였습니다. 부모님 음덕으로 모두 무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새로 단장한 산소를 보니 마음 한편이 뿌듯합니다. 늘 부모님을 잊지 않으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자손들 두루 살펴주시옵소서.”

이어 누님 내외, 고덕 아우, 부산 아우, 여동생, 그리고 아내까지 한 잔씩 정성껏 올리며 소망을 전했다.


배례를 마친 후, 산소 주변을 돌아보며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산소를 조금 넓히고, 봉분도 약간 낮췄어요. 아버지 쪽으로는 우리 형제들 자리가 될 겁니다. 맨 끝이 제 자리이고, 그 옆으로 고덕 아우, 부산 아우 순입니다. 어머니 쪽으로는 손주들 몫으로 남겨뒀어요. 자리는 미리 정하지 않았으니 훗날 자유롭게 의논하길 바랍니다.”

형제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산소 관리 역시 형제 계가 중심이 되어 부담을 덜어주자고 뜻을 모았다.


산소를 내려와 종갓집으로 향했다. 종부 형수님이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하시고, 산수유차를 내어주셨다.

“종손 형님 다친 데는 좀 어떠세요?”

“예, 많이 좋아지셨어요. 오늘은 첫 외출 나가셨다네요. 이제 막 돌아오신다 하네요.”

종가 백불 고택 마루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고택의 정원을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마을 어귀에서 마침 버스에서 내린 종손 형님을 뵈었다.

“아이고, 다들 오셨구먼. 참 효자들일세.”

“형님, 다리는 좀 나아지셨어요?”

“그려, 모처럼 바람 쐬고 오는 길이네.”

종손 형님과 옻골의 대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더 남겼다.


저녁은 부산 아우가 예약해 둔 식당에서 함께했다. 조카 기현이가 아는 집이라며 자신 있게 안내했다. 수육과 빈대떡에 국수로 마무리하고 외가에 가져갈 음식도 넉넉히 포장했다. 그러나 장시간 운전과 피로 탓이었을까, 갑작스레 감기 기운과 함께 코피가 터졌다.


밤이 깊어 매원 외가에 도착했다. 외사촌 형님이 마을 어귀까지 나와 반겨주셨다. 집 안엔 벌써 며칠 전부터 청소와 준비를 마치신 듯, 한결같은 환대가 느껴졌다.

“날 밝을 때 함께 저녁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늦었구나.”

“예, 기현이가 식당을 예약해 두어서 그리 됐습니다.”

외가 형수님이 손수 술상을 내오셨다. 외가의 기와지붕, 와당을 채취해 담근 술이라고 하셨다. 도수는 높지만 담백하고 깊은 맛이다. 몇 잔을 마시며 이야기꽃이 피었다.


외가는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 품속 같다. 따뜻하고 깊은, 세월의 안식처. 밤은 이야기를 삼키듯 깊어가고, 마당에 내려서니 상현달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다. 별들이 총총히 반짝이고, 뒷산 너머에선 소쩍새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녘,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감기 기운에 고단했던 몸은 푹 자고 난 뒤 한결 가벼워졌다. 강촌에서 듣던 익숙한 새소리와는 달랐다. 재잘거리는 듯하면서도 소곤거리는 낮은 음성, 그 낯선 소리에 이끌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스름한 여명 속, 별당 밖으로 나서 귀를 기울이니 새소리가 온 마당을 감싸고 있다.


잠시 사랑채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진주댁을 소개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칠곡 진주댁은 왜관읍 매원마을 상매에 위치하며, 박곡 이원록의 9 세손 상립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한 이 집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는 양반가의 주택입니다.”


새소리 속에 마당은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사랑채 앞에 서니 까까머리 시절, 큰 외아재와 함께 이 방에서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겨울밤, 방이 추워 병풍까지 둘러쳐 주었지만, 이불속에서도 잠을 설쳤던 그날. 새벽녘, 가마솥 앞에 쬐던 불빛 속에서 들려오던 외 아재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사랑채를 돌아 안채 마루방을 지나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 머물던 작은방 앞에 멈추었다. 낡은 문틈으로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졌다. 규수 시절 어머니는 그 방에서 수를 놓으셨다. 지금도 어머니가 손수 수놓은 목단꽃 수 한 폭이 우리 집에 있다. 어머니는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그 수를 놓았으리라. 그 숲 앞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문득 떠올랐다.


그 시절의 안채는 두 칸을 넘는 널찍한 방이었다. 우리는 방학이면 외가에 모여들었고, 그 넓은 방은 온 가족이 함께여도 전혀 비좁지 않았다. 그 방에서 우리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웃고 떠들었다. 안채 앞에는 흙담 고방이 있었다. 곡식과 장이 가득하던 고방은 큰 외숙모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커다란 열쇠 꾸러미를 차고 드나들던 외숙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그 고방 자리에 별채가 들어섰고, 나는 그 별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별채 뒤뜰로 올라서니 소나무 그늘 아래 작은 텃밭이 펼쳐졌다. 상추, 파, 수박, 옥수수… 계절을 품은 생명들이 고요히 자라고 있다. 그 옆으로는 찔레꽃 덤불이 붉게 피어났다. 연분홍 꽃잎 사이로 노란 꽃술이 고개를 내밀고, 푸른 잎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다. 찔레꽃을 바라보니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머니는 겨울 이불의 홑청을 벗겨내고 여름 홑청을 꿰매시며 찔레꽃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사람아…”

어머니는 왜 그 노래를 불렀을까. 나는 왜 아직도 그 노랫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까.


잠시 후 외사촌 광식이 형님이 오셨다. 모두가 따라 텃밭 너머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숙종 대에 암행어사를 지낸 조상님의 사당터라고 했다. 매원마을은 매화 수술을 닮은 지형과, 매화 잎을 닮은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이라 한다. 그중에서도 이 터는 안산 고래능선의 아가미에 맞춘 명당 중의 명당. 이곳이 바로 상매(上梅)라 했다. 지금도 그 옛날 회화나무 고목이 우리를 반겨준다.


외가는 800석을 짓던 대농이었다. 외할아버지의 호는 ‘실농(實農)’이다. 내가 서예에 입문한 뒤 사랑채 당호를 부탁받고 감히 ‘실농재(實農齋)’라 썼다.

“현판 글씨가 설익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웃으며 말했다.

“누가 썼느냐가 중요하지, 잘 쓰고 못 쓰고 가 뭐가 중요하겠나. 외손이 쓴 글씨가 더 소중하지 않겠나.”

그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번엔 인사동에서 구한 왕희지 집자 주련 네 점을 가져왔다. ‘춘화 추실(春花秋實)’…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 참으로 실농재와 어울리는 문구였다. 형님은 사랑채와 잘 어울린다며 기뻐한다.


찔레 덤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모두가 저마다의 그리움을 찔레꽃에 실어 보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우물가 찔레는 담장을 타고 흘러내려, 초록 잎과 어우러져 하늘빛을 받으며 더욱 빛났다.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아침 식탁은 형수님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들로 정성껏 차려주셨다. 추어 시래깃국, 상추쌈, 연근조림, 두릅튀김, 부추와 오이, 갓 꺼낸 묵은 김치까지…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어머니의 손맛이네.”

식사 후, 형님이 안방 깊숙이 숨겨둔 보물을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바로 홰나무로 짜 맞춘 반닫이 장롱이다. 외할머니의 손길이 깃든 반닫이엔 정교한 놋쇠 장식과 붕어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형님이 조심스레 여니, 안에서 외할아버지의 사주가 든 단자 봉투가 나왔다.

‘최 생원 하집사(下執事)’

“이 반닫이는 아주 귀한 것이라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네.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특별히 꺼낸 것이네.”

낯익은 반닫이 앞에서, 문득 외할머니가 그 자리에 앉아 계신 듯했다.


찔레꽃을 찾아 나선 길. 그 길에서 나는 고향의 산소를 찾았다. 백불 종가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외가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찔레꽃과 어우러진 꽃무리들, 외사촌 형님과 형수님의 정성은 오늘을 있게 한 모든 것들이었다.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그리고 먼 훗날,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또 다른 길손에게 나는 무슨 이야기를 남겨주어야 할까.

찔레꽃 향기 속에서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202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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