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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돈 Nov 20. 2024

피천득 다시 읽기(구원의 여상)

최민자 수필가 강연 소감


구원의 여상

최원돈


최민자 수필가의 <피천득 다시 읽기>에 나갔다.


반포천 피천득 산책로는 만추로 물들었다. 가을 숲 터널을 지나 피천득 좌상에서 묵념을 올리고 「봄날」을 읽는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갯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발치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최민자 수필가가 피천득 선생을 만난 것은 첫 수필집 『하얀 꽃향기』를 펴내고 나서 이 수필집을 받은 선생의 부름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름난 호텔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사십 후반의 젊은 수필가와 구십 노교수는 문학을 이야기하며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당시 스승은 원로 수필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스승의 집으로 찾아가 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특전을 받으며 지도를 받았다. 스승은 젊은 수필가와 수필을 통하여 사제의 정을 쌓았다. 그러나 차츰차츰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며 적조해져 한동안 만나지 못하면 전화로 제자를 불렀다.


“어디 멀리 어린 왕자 별에 갔다 왔어”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어느 해 구월 오후의 일이다.

 한강 강가에서 은사시나무가 햇볕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봄날의 흰 꽃향기의 때죽나무꽃이 은방울 소리를 내면서 막 흔들리는 것 같았다. 평온한 강물에 바람이 부니까 오소소 소름을 돋으며 강가의 윤슬이 반짝이는 풍경을 보니 마치 강이 바람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당신뿐이야.”

   

억새들이 강가에서 흔들리는 풍경을 보니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머리를 감고 말리는 모습같이 싱그럽던 느낌도 나면서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인가. 살아있다는 것은 흔들리는 것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노란 헬멧을 쓴 스무 살 남짓 앳된 아가씨가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신도 가끔은 흔들릴 거야’라고 결구를 맺었다.


피천득 선생님은 ‘신도 가끔은 흔들릴 거야’라는 문장에 흔들린 것 같았다.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맞아, 맞아. 그래 신도 흔들리지, 흔들리고 말고.”

“신도 이런 악한 세상을 보고 ‘세상을 멸망시켜야겠어’라고 생각을 했다가,

 이렇게 아름답게 흔들리는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다시 마음을 바꾸는 것일 거야”

“그런데 너는 누가 귀띔을 해줘서 이런 글을 쓰느냐.”


“우리가 적적하고 쓸쓸할 때 작은 돌멩이 하나가 강물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 가듯이, 선생님도 노경에 이렇게 작은 글귀 하나가 크게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 안의 작은 떨림이 독자들한테 번져서 그것이 큰 파장과 파문을 만들면서 큰 울림으로 작동하는 그런 마음은, 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피천득 선생은 왜 최민자 수필가에게 반했을까. 것은 바로 이런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선생은 공연히 젊은 여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심성을 가지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최민자 수필가를 가까이서 격려하며 아껴 주었다. 는 피천득의 ‘구원의 여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최민자를 통하여 자신의 ‘봄날’을 느낀 것이 아닐까.


피천득 선생은 평생 동안 ‘구원의 여상’을 갈구했다. 그가 갈구한 ‘구원의 여상’은 어머니였고 딸 서영이었으며 또한 젊은 예술가들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이 좋아예술가들을 통하여 ‘구원의 여상’을 갈구한 것이 아닐까. 나는 최민자 수필가의 ‘피천득 다시 읽기’를 통하여 피천득의 ‘久遠의 女像’을 보았다.


”구원의 여상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단테의 '아트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헤나(Henna)의 <올라(Fabiola)>입니다.…"


"여기 나의 한 여상이 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늘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애수에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한편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매혹하게 하지 아니하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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