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김성혁의 수필집을 읽고
최원돈
"세월은 흘러가지만,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자전적 에세이 <아름다운 도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의 글은 감성보다 이성이 앞섰다고 했다. 이제는 성찰과 감성을 더해 <아름다운 날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수필은 삶을 다시 배우는 길이자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통로였다. 글을 쓰며 내면을 겸손히 들여다보았고, 감성과 이성을 함께 살피는 법을 배워갔다. 그렇게 엮은 글들은 흩어진 마음을 이끄는 스승이 되었고 생의 '아름다운 날들'을 붙잡아 두는 간절한 몸짓이 되었다.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은 인생이 건네준 고요한 선물이다. 그래서 이 책 <아름다운 날들>은 도전의 끝이 아닌, 그 도전이 피워 낸 또 하나의 시작이다. 젊은 날의 열정이 <아름다운 도전>을 낳았다면, 이 책은 그 여운 속에서 자라난 사유의 흔적이다."
그는 '긴 세월을 돌아왔지만, 결국 나는 어린 시절 그 '문학의 창' 앞에 다시서 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자금부터라도 괜찮아. 이제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나는 지난가을 '한국수필 화천 문학기행'에서 '이외수문학관'을 나와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늦깎이 수필가로 등단하였다며 자신의 문학에 대한 포부를 들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 후 그는 한국수필 송년회에서 신인상을 받고 대표 인사말을 했다. 그때도 우리는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등단한 지 일 년도 되기 전에 수필집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왔다. 책 속의 영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거의 나도 본 영화들이다. 책을 읽으니,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수필은 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는 많은 영화 수필을 썼다.
<두 형제 이야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쓴 수필이다.
“어릴 적 전장은 멀게만 느껴졌으나. 실상 우리 가족 역시 그 상흔 속에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작은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징집되어 전사했다. 그 상실의 깊이는 세월을 넘어 집안의 공기 속에 여전히 떠돌았다.
그런 가족사 위에 또 하나의 비극이 덧입혀졌다. 우리 형이 세상을 떠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홉 살 위였던 형은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단에 섰던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뒤늦게 입대한 후 휴가를 나와 마주했던 형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하다. 거친 군복 차림에도 특유의 단정함과 차분한 눈빛을 잃지 않았던 형은 늘 우리 가족의 든든한 자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부가 전한 전보 한 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군 복무 중 순직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그날 이후 스스로 맹세했다. 이제는 형을 대신하여 가문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고, 더는 아무도 우리 가족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자락에 나의 청춘은 철이 들었고 삶은 단단한 결기를 품기 시작했다.
영화 속 ‘진석’의 표정에서, 기억 속 형을 찾던 어린 날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날 아들들에게 끝내 말하지 못한 오래된 상실을 조용히 떠올렸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 눈물로 전하지 못한 그 시절의 침묵이 안에서 잔잔히 흔들렸다.”
<여명의 눈동자>
“‘여명의 눈동자’는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되지 못한 역사이자, 우리 교과서의 빈칸을 메우는 생생한 증언이었다. 역사책은 무미건조한 사건을 나열하지만, 그 속에 살았던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기록하지 못한다. 드라마는 인물들의 표정과 짧은 대사 한마디 속에 한 세대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꺾이지 않는 의지를 담아냈다.
작품이 각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대본을 쓴 송지나 작가가 제 주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성장하며 비슷한 삶의 궤적을 공유했던 이가 이토록 장대한 서사를 일구어냈다는 것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작가의 문장에는 사료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비명과 침묵을 동시에 헤아리는 심안이 담겨 있었다.
이 서사는 우리 아버지의 청년기와도 겹친다. 1930년대부터 오사카에서 격랑을 견디셨던 아버지는 전쟁의 먹구름을 온몸으로 마주하셨다.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으로, 결국 제주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셨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이 살아낸 삶은 결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사카의 거리와 제주의 바다 사이를 오가며 우리 아버지가 겪었을 상처와 희망의 변주곡이었다.”
<벤허 첫 감동의 이야기>
“누구에게나 기억의 필름 속에 처음 마주한 영화 한 편이 있다. 내게 그것은 <벤허>였다. 서서 봐야 했던 낡은 극장, 뜻도 다 모르는 외국어 자막, 전차의 굉음과 찰턴 헤스턴의 눈빛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그날. 줄거리도 상징도 알지 못한 채, 화면을 뚫고 나오는 어떤 힘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강렬했던 장면은 긴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았다. 인생의 어느 고비마다 문득 떠올라 생각의 구석을 조용히 밝혀주었다.
그때의 나는 단지 영화를 보는 소년이었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질문을 마주한다. ‘너는 무엇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명확한 해답을 요구하지 않는 그 질문은 삶의 결을 다시 매만 지게 한다. 복수보다는 용서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것, 정의는 외면보다 내면에서 자라나는 감정이라는 것, 그리고 고통은 인간을 가장 정직하게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영화로부터 배웠다. <벤허>는 말없이 그러한 진실을 건넸고 그 조용한 진동 속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금 가늠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텔레비전에서 <벤허>를 다시 만날 때면, 리모컨을 내려놓고 한동안 화면 앞에 멈춰 서 있곤 한다. 소년 시절, 땀과 먼지 속에서 스크린을 올려다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 이야기는 여전히 내 마음 한쪽에서 흐르고 있다. 빛과 어둠, 질주와 정지, 분노와 용서가 교차하던 그 스크린은 이제 내 안에 깊이 박힌 또 하나의 극장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그 속에서 가끔은 벤허가 되고 가끔은 관객이 되어 조용히 그 이야기 속을 걷는다.”
현대인에게 영화는 빼놓을 수 없는 문화 중 하나이다. ‘영화감상은 어떻게 해야 하고 영화에 대한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김성혁의 영화 수필을 읽고 깨우쳤다. 작가는 ‘영화광’인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모여 집에서 영화를 보고 서로의 감상평을 나누며 가족애(家族愛)를 다독인다.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으며 의미화하고 가슴 깊이 담아 자신의 삶 속에 녹여내고 있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하나의 일상적인 예술이 되었다. 바쁜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어둠 속의 스크린 앞에 앉아 다른 사람의 삶을 잠시 빌려 산다. 낯선 도시를 걷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랑을 경험하며, 때로는 삶의 깊은 슬픔과 기쁨을 함께 통과한다. 그래서 영화는 현대인의 마음을 비치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된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먼저 마음을 조금 비워 두어야 한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화면이 밝아지면 우리는 잠시 자신의 일상에서 물러나 영화 속 세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침묵, 빛과 그림자, 음악이 흐르는 순간을 가만히 바라본다. 때로는 대사보다 긴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짧은 장면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한다. 좋은 영화감상은 그 장면들을 서둘러 지나치지 않고 마음속에 머물게 하는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지, 어떤 인물이 나와 닮아 있었는지, 혹은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본다. 영화는 끝났지만, 이야기의 여운은 그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화 수필을 쓴다는 것은 그 여운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줄거리를 단순히 정리하는 것보다는 영화가 내 마음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한 장면, 한 대사, 혹은 한 인물의 시선을 붙잡고 그 순간에 담긴 의미를 풀어낸다. 왜 그 장면이 나를 멈추게 했는지, 그 장면 속에서 어떤 삶의 모습이 보였는지 차분히 이야기해 본다.
좋은 영화 수필은 영화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이다. 스크린 속 이야기가 내 삶 어디에서 만나는지, 그 만남이 어떤 생각을 남겼는지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면 된다. 때로는 한 편의 영화가 오래된 기억을 깨우기도 하고, 잊고 있던 감정을 조용히 불러내기도 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글로 붙잡는 것이 영화 수필의 출발이다.
결국 영화감상과 영화 수필은 서로 닮아있다. 영화를 보는 일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고, 영화 수필을 쓰는 일은 그 세상을 통해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시작된 한 편의 영화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글이 될 때, 영화는 비로소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나는 이 깨달음을 오늘 김성혁의 <아름다운 날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의 제2의 삶이 더욱 풍성하고 보람차기를 기원한다. (202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