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by 최원돈

하얼빈

최원돈



갑진년 하루를 앞두고 아내와 함께 영화 <하얼빈>을 보았다.

한 해를 보내며 줄 탄핵에 무안 항공기 참사까지 덮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국에 모처럼 가슴 뻥 뚫리는 영화였다.

‘하얼빈’은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일본의 조선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장소이다. 안중근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여 조선 총독이 하얼빈에 온다는 정보를 듣고 암살할 것을 모의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영상들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은 100년 전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 러시아풍의 건물들과 마차와 사람들은 낯설지 않았다. 만주 벌판의 황량한 사막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멀리 석양에 물든 풍경은 이국적 그리움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하얼빈역에서의 저격 장면은 사진으로 보았던 당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안중근이 건너오는 장면 등, 영화가 끝날 동안 이어지는 영상과 사운드트랙의 음악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내가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읽으며 알게 되었던 안중근 우덕수 최재형은 익히 알 수 있었지만, 김상현 이창섭 공부인 은 알지 못한 허구의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뜨거워질 이야기를 영화적 각색으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갔다. 안중근이 살려준 포로였던 일본 중좌의 끈질긴 추격과 그에게 생포된 김상현이 밀정이 되어 배반하면서 암살 계획은 탄로가 나고 밀고 당기는 서스펜스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운명의 그날 10월 26일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가 사열대를 시찰하며 걸어오는 그를 권총으로 저격해 쓰러트린다.


“까 레아 우라” “까 레아 우라” “까 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끌려가는 안중근의 모습은 의연하고 당당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환희에 차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던 울분이 뻥 뚫리는 기본이었다.


이밖에 허구이겠지만 밀정 김상현과 독립군 우덕수와의 악연은, 마침내 김상현은 자신의 사냥꾼 일본 중좌를 가슴에 품고 있던 단도를 꺼내어 처단하는 장면에서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대대행 체제로 비상시국을 맞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안공항에서는 항공기 대형 참사로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초상집도 이런 초상집이 없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저 많은 안타까운 영혼들을 어떻게 달래 줄 수 있을까. 어디를 둘러봐도 숨이 턱턱 막혀온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그나마 세모(歲暮)에 <하얼빈> 영화가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한 지 36년 만에 우리 대한민국이 해방되었듯이, 을사년 새해에는 지금 이 아픔을 모두 씻고 밝은 대한민국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못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갑진년 마지막 전날 영화 <하얼빈>을 보고 나오니 캄캄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다.

윤동주의 서시(序詩)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되뇌어 본다. (2024. 12. 3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를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