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르다 Oct 04. 2024

5주년을 아니 7주년을 달려가고 있는 우리에게

처음

경주 할머니들이 덩치 있는 오빠를 참 좋아했다

2022년도에 쓴 글이 저장만 되어있어 이렇게 글을 올려본다. 지금은 10일 뒤에 7주년이고 이제 내년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2년 전 쓴 글을 보니 참 그때의 감정이 귀엽기만 하다. 아까우니 한번 올려본다..

전주 여행가서 꼭 한복을 입어야 한다며 땡깡을 부렸다
제주도 여행가서 찍은 사진
통영사람과 부산사람 눈보고 신나다



평소 글을 쓰기 좋아해 일기도 매번 써보고,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너무 부끄럽다.

왜냐하면 내 감정에 너무 솔직해

나조차도 과거의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주 내 글을 읽는다.

이때는 이런 감정이 있었구나

그때의 일들을 잘 견뎌 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은 특히 남자친구와의 감정을 글로 기록하려 한다.

이전에 들었던 생각들이 기록하며

성장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내가 이 사람과 언제까지 함께 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



처음 시작은 2017년이었다. 10월 13일 남자친구 생일 전날이다.

나는 21살에 처음 연예를 시작했다.

처음 교회 오빠였던 지욱이는 첫인상이 너무 안 좋았다.

무례하고, 예의 없는 사람, 내가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깐


타 지역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보니 교회도 자연스럽게 근처로 옮기게 되었다.

거기서 맨 뒤에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옆으로도 크고, 위로도 큰' 남자가 지욱이었다.

처음 마니또 게임을 하다가 비밀로 해야 하는 상태에서 큰소리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소리쳤다.

마니또가 누구일지 기대하는 나에게 그 기대감을 밟아 버리는 일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같이 노는 일이 더러 있었다.

생각보다 재치 있고, 웃긴 모습들이 첫인상과 다르게 보였다.



사귄 후 지욱이는 모든 게 서툴렀던 나를 이해해 주고, 속도를 맞춰주었다.


손을 잡고 하는 모든 스킨십들이 내게는 죄책감으로 다가왔었다.

교회를 다니며 혼전순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일까?

그래서 손을 잡는 것도 너무 어색해 내 몸에서 내 손만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손을 잡고 좋아하는 오빠를 보며 큰 결심을 했는데,

'뽀뽀는 좀 빠르게 내년 초에 해줘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내 딴에는 엄청 큰 결심을 가지고, 오빠에게 말을 했다.

 "오빠 뽀뽀는 내년에 해드릴게요"

오빠의 표정은 정말 다양했다.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제는 손 잡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더운 날씨도 손을 잡는 거를 좋아하는데

가끔 땀이 차면 손을 자연스럽게 떼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평온한 연애를 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MBTI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F이고, 남자친구는 T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정말 많다.

난 감정적으로 위로하고, 또 위로받길 원한다.

오빠는 현실적인 문제방안을 말해주기를 원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암울한 나의 감정을 메모장에 와다다다다 써내려 나가곤 한다.


오빠는 종종 내 메모장에 찾아와 오빠의 하고 싶은 말을 방명록처럼 적고, 흔적을 남기곤 한다.


2018.4.3
애기야 사랑해


애기야라는 말이 오글거려 몸이 웅크려지다가도

이 단어를 7달 동안 들으면 그냥 애칭이 된다.

오빠는 나를 애기라고 불렀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글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냐고 물으면

이 메모장에 있는 '애기야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다.

표현이 서툰 오빠는 F가 감동받을 만한 귀여운 고백을 하곤 한다.

화가 나더라도 이러한 말 한마디는 날 녹게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 F노가다여자의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