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긴 목에 검은 부리, 끝이 새카만 날개를 가진 황새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199호입니다. 밀렵, 자연환경 파괴 등으로 국내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는데요. 1990년대부터 일본 러시아 독일 등에서 황새를 수입해오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됩니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은 수년간 성공적으로 복원해 충남 예산군 황새공원에서 사육 중인 황새를 전국 지자체에 암수 한 쌍씩 보내는 '전국 황새 방사 거점사업'을 2022년 9월부터 추진했습니다. 전국 각지로 보내진 황새 부부가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가 태어나면 부부와 함께 자연으로 방사한다는 구상을 세웠는데요. 이런 식으로 주변 지역을 황새 서식지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었죠.
김해시는 이 사업의 대상 지역으로 선정돼 2022년 암컷 '금이'와 수컷 '관이'를 화포천습지 봉화뜰로 데려왔습니다. 2023년 금이가 폐사하면서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그해 11월 황새 부부 A14(수컷)와 백(암컷)이 새로 와 5개의 알을 산란합니다. 하지만 부화 일이 지나도 반응이 없어 무정란으로 판정받습니다.
이에 시는 협의 끝에 이들이 포란 중인 알을 예산군 황새공원에서 가져온 건강한 알 4개와 교체합니다. 이 알에서 3마리의 새끼가 태어나 '봉이' '황이' '옥이'라는 이름도 얻었죠. 아기 새가 어른이 되면 암수 두 마리만 남기고 모두 자연으로 방사할 예정이었는데요.
지난 15일은 김해시 화포천습지 과학관 개관식이 개최되는 날이었습니다. 시는 개관식 하이라이트를 황새 방사 퍼포먼스로 정했는데요. 황새 부부와 어른이 된 '옥이' 등 3마리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낼 계획이었습니다.
보통 방사는 새의 스트레스를 줄이려 서식지 근처에서 이뤄지지만, 이때는 개관식을 위해 사육장에 있던 황새를 700m 떨어진 과학관 마당으로 옮겨왔고 행사 시작 전부터 황새들을 대기시켰습니다. 시장 국회의원 등 참석자들의 연설 뒤 방사 일정을 잡아 황새들은 1시간 40분가량을 폭 30~40cm 크기 새장에 꼼짝없이 갇힌 채 기다려야 했죠. 당시 바깥 기온은 22도 안팎이었습니다.
새장이 열린 후 두 마리의 황새는 날갯짓하며 곧바로 날아갔지만, 황새 부부 중 수컷은 문이 열려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육사가 부리를 잡고 끌어냈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고꾸라지며 주저앉아버렸는데요. 사육사가 황급히 사육장으로 옮겨 응급처치했지만 결국 폐사했습니다.
황새를 방사하다가 폐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인데, 방사 전에는 건강에 별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확한 폐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좁은 새장에 오랫동안 갇혔던 황새가 탈진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김해시는 국가유산청에서 새장을 정식으로 대여했고, 목조 재질에 통풍이 되는 구조라 더위로 인한 폐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처음 황새를 데려올 때도 같은 새장을 이용해 약 6시간 동안 이동했고, 행사 당일에도 사육사 등이 황새들을 관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해시 관계자는 "수컷 황새가 활동성이 높은 개체다 보니 지나치게 활발히 움직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하고 있다"면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한 민원인이 김해시장, 김해시 환경국장·환경정책과장, 현장 운영 책임자, 수의사, 사육사 등을 대상으로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동물보호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자연유산의 보전 및 활용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는 겁니다.
평소 사회 전반의 각종 부정부패에 대해 지속해서 신고·고발해 왔다는 민원인은 '사건 당일 시가 황새를 방사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1마리가 폐사에 이르렀다'는 취지로 고발장을 제출했는데요. 그는 "김해시의 방사는 공개된 정황상 복지·안전 중심의 절차라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만큼, 수사기관이 이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해환경운동연합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천연기념물을 복원하는 김해시가 생명에 대한 기본적 인식조차 없이 황새를 처참하게 다뤘다고 지적했는데요. "김해시는 황새 폐사 책임을 지고 원인과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시민에게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역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공공기관에서조차 동물을 연출용 오브제 정도로 취급한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꼬집었죠.
자연 적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방사 과정을 이벤트로 활용했다가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비판이 계속 이어지는 지금, 행사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