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의 역명이 정해지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경성대학교는 역명을 '경성대역'으로, 부경대학교는 '부경대역'으로 해달라며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역명을 '용소역'으로 하되, 역 안내 표지판에 두 학교 이름을 나란히 써주겠다는 절충안까지 제시됐죠. 그러나 '어느 학교 이름이 먼저 나오느냐'를 두고 다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도시철도 개통 직전까지 첨예하게 대립한 끝에 지금의 경성대·부경대역이 됐습니다.
어순은 단순한 순서 이상의 함의를 갖습니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동북아 3국의 공식 표기 순서를 '한중일'로 통일하기로 한 것도 대중 관계를 회복하려는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일중'과 '한중일' 표기를 혼용하던 것을 원상 복구하겠다는 취지와 함께 일본에 편중된 외교 기조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 위한 조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최근 한중 관계 복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경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회복하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실용과 상생의 길로 다시 함께 나아가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안이 담긴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면서 "중국과 꾸준한 대화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길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동북아 3국 표기는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 통상적으로 '한중일'을 사용했습니다. 동북아 3국 정상회의 개최 순서에 따라 '한일중 정상회의'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보통 한중일로 더 많이 표기됐죠.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2023년 9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정부는 동북아 3국을 '한일중' 순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 정부 들어 가치와 자유의 연대를 기초로 미국, 일본과 보다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어 '북미'보다 '미북', '한중일'보다 '한일중'으로 부르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번 조치로 정권마다 표기를 혼용하면서 이념 성향과 연결 짓는 소모적 논쟁을 끊겠다는 입장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표기 혼용으로 '어느 나라와 더 가깝나'하는 등의 소모적 논쟁이 이어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