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기억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랑 버스를 타고 중구 중앙동 근처를 지나갔습니다. 당시 부산시청이 중앙동에 있었습니다. 어린 저의 눈에 도로에 서 있던 탱크(장갑차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와 총을 든 군인 아저씨들이 들어왔습니다. TV에서만 보던 탱크 실물을 목격한 저는 신이 나서 손으로 가리키며 "엄마 탱크야, 탱크"라고 떠들었습니다. 순간 어머니는 난처한 얼굴로 저의 손을 잡아끌었고 주위를 살폈습니다. 버스 안에 있었던 손님들은 모두 모른 척했습니다.
그때가 1979년이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이었는지, 10·26 사건이었는지는 너무 어려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비상계엄'이란 단어를 들으면 저에게 떠오르는 기억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아주 무서운 기억입니다. 탱크와 총을 든 군인들이 부산 시내,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중심에 주둔했다는 건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감시한 대상은 바로 시민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바로 1년 뒤 광주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무엇을 했는지. 광주의 기억은 수십 년 동안 온 국민을 아프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그 상처에서 100%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 뒤 군인들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전개될 때 학생 노동자 농민 시민들은 백골단·전경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이 나타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2024년 12월 3일 저녁 총을 든 군인들이 갑자기 TV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도 국회에서. 누군가는 너무 어이가 없어 "강철부대를 국회에서 찍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최근 '강철부대'란 프로그램을 통해 '707'이란 부대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 부대가 진짜로, 그것도 국회에 총을 든 채 등장했으니 놀랄 법도 합니다.
45년 만에 역사의 현장에 군인들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예전 비상계엄 선포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군사정변, 1972년 10월 유신, 1979년 부마민주항쟁 등등. 예전 사례들과 비교해 작년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비상계엄에 군대까지 동원할 정도였습니까.
계엄 1년이 지났습니다. 계엄을 주도했던 대통령은 탄핵으로 물러난 뒤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재판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 TV에 나옵니다. 계엄을 주도하거나 동조했던 별들도 대부분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계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어느 정도 정리되는 분위기입니다. 사법적 판단은 앞으로 줄줄이 나올 예정입니다. 역사적 판단은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계엄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총을 든 군인들을 동원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군인들의 임무는 국가와 시민을 지키는 겁니다. 군인들은 그렇게 훈련받았고, 그러려고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군인들의 총구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시민을 향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부터 배운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