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만큼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부처는 드뭅니다.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출범한 해수부는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처음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청사가 있었으나 3년 뒤 서대문구 충정로로, 6년 뒤엔 종로구 계동으로 옮겼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해수부 폐지 검토 소문이 떠돌자 김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해수부 폐지 재고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추진하던 이명박 정부는 실제로 해수부를 해체했죠. 5년 만에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할 때 부산 이전이 잠시 논의됐으나 결국 정부청사가 모여 있는 세종시로 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해수부 부산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의 빠른 준비를 지시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부산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을 해수부 장관으로 지명하죠.
대전 충남 인천 등 타 지역의 반발을 잠재우고, 이전에 반대하는 국가공무원 노동조합 해수부지부와 해수부 간의 갈등을 봉합한 끝에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 출발점이 될 해수부 청사 이전이 지난 8일부터 본격화됐습니다. 부산은 지난 2017년 영도 동삼혁심지구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끝으로 1차 공공기관 이전이 마무리된 이후 10여 년 만에 정부 부처 이전이라는 큰 기회를 만나 한껏 설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시작한 지 이틀째인 지난 10일 전 장관이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입니다. 앞서 JTBC와 한겨레신문은 윤영호 전 통일교 본부장이 민중기 특별검사팀 조사에서 "2018~2020년 전 의원이 (통일교 성지인) 천정궁에 방문해 한학자 총재를 만나 인사했고, 현금을 4000만 원가량 전달했다"며 "시계도 2개 박스에 넣어서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윤 전 본부장은 2018년 9월 10일 '한학자 특별보고'에 "천정궁에 방문했던 전 의원도 (통일교 관계자) 600여 명이 모인 부산 5지구 모임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비행기로 서울로 가셨다" "우리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SBS는 통일교 로비 현안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언급했죠.
미국 출장을 마치고 11일 오전 귀국한 전 장관은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날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난 전 장관은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허위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만,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제가 해수부 장관직을 내려놓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죠. 이 대통령은 전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전 장관이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해수부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특히 지난 8일부터 청사를 부산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죠. 일부에서는 해수부 청사 이전을 계기로 부산을 해양수도로 키우겠다는 정부 정책 추진에도 일정 부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등에 이어 해운 기업 본사의 부산 연쇄 이전, 북극항로 개척 추진 등도 흔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계획을 앞장서 끌었던 정부 부처 수장이 중도 하차했기 때문이죠.
또 후임 장관이 취임하려면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는 등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까닭에 내년 1월 1일부터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해수부 업무를 하겠다는 계획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