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든, 그린란드에서든, 그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비장하지 않습니까?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 같은 심정이 느껴집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비장함을 내비친 상대는 누구일까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보이지만, 그린란드에서 다른 나라가 아른거립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과 프랑스는 모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입니다. 굳이 회원국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평소 관계가 좋은 미국과 프랑스가 왜 이렇게 적대적인 사이로 변했을까요?
답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추진하면서 덴마크를 포함한 유럽이 반발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통상 긴장감이 고조된다는 말은 군사적인 충돌을 암시합니다. 실제 그동안 미국은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군사력 동원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천조국’ 미국이 나토 동맹국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대통령이 트럼프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집요하게 그린란드에 집착할까요?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그린란드는 북미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최단 경로에 자리 잡고 있어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힙니다. 그래서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망인 ‘골든돔’ 구축을 위해 그린란드가 지정학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희토류와 우라늄, 석유 같은 천연자원도 풍부합니다.
그린란드를 원하는 트럼프의 속내는 전 세계가 알고 있지만, 트럼프는 시선을 살짝 돌립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원하고 있고, 덴마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그린란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집착과 위협이 계속되자 덴마크와 주변국들은 그린란드에 병력을 보내 사실상의 ‘무력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트럼프는 “덴마크는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다. 추가로 개 썰매를 배치했고, 정말 진심으로 개 썰매를 투입했다”고 조롱했습니다.
문제는 조롱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가장 사랑하는 카드 꺼냈습니다. 모두 아시죠? 바로 관세입니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난해 집권 2기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카드를 앞세워 친구든, 적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에 반대되는 세력을 압박했습니다. 아마 후세 사람들의 영어 사전에 ‘트럼프’라고 치면 미국의 대통령이란 뜻과 함께 “자기 이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트럼프가 ‘트럼프’했습니다. 그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의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관세는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유럽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유럽연합(EU)은 18일 회원국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EU가 검토 중인 맞대응 수단은 크게 두 갈래로 전해졌습니다. 하나는 지난해 미국·EU 무역 협상 과정에서 마련했다가 보류한 930억 유로(약 159조 원) 규모의 보복 관세 패키지입니다. 만약 이 방법을 동원한다면 유럽이 미국에 ‘트럼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입니다.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입니다. 2023년 도입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습니다.
EU는 오는 22일께 브뤼셀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과 그린란드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 방침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유럽의 대응 방향은 정상급 회의에서 최종 조율될 것으로 보입니다. 보복 관세든, ACI 발동이든 유럽이 실제 행동에 나서면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수십 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과 유럽이 벌이는 싸움. 우리는 관전자 입장에서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여유롭게 싸움 구경을 하도록 내버려둘 트럼프가 아니죠. 미국은 최근 주요 반도체 생산국을 향해 미국에 투자하지 않을 경우 ‘100% 반도체 관세’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이라는 점에서 두 나라에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관세 불똥이 또다시 우리에게 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