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3주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서 지금까지 수천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넷과 통신망이 차단되며 고립된 이란에서 간간이 전해지는 소식은 온통 살풍경입니다.
시위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상인들이 경제난과 고물가에 반발해 거리로 나서면서 시작됐습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번져 약 일주일 뒤에는 이런 전체 31개 주 가운데 27개 주, 250여 개 지역으로 확대됐습니다. 시위로 혼란이 확산되면서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전국 각지의 상인과 시민이 동참해 이란 혁명 이후 손꼽히는 규모의 격렬한 시위로 번졌습니다.
이란 정부가 지난 8일 인터넷과 통신망을 차단하면서 사태는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란 정부는 실탄 사격을 하며 본격적으로 유혈 진압에 나섰고, 사망자가 급격히 늘면서 시위대의 저항도 거세졌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인권운동가 집단이 펴내는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14일 기준 시민과 군경을 포함해 최소 2615명이 숨지고, 1만847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란 시민의 반정부 시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9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2017년 경제정책 실패, 2019년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인한 반정부 시위가 있었습니다. 2022년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번 시위 규모는 이전의 다른 시위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970~80년대만 해도 괜찮았던 이란의 경제는 핵 개발에 돌입하면서 내리막을 걷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미국을 필두로 2006년부터 이란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습니다. 2015년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이 모여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의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가 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습니다. 그러자 이란도 미국이 협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다시 핵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유엔 안보리는 이란이 JCPOA를 위반했다며 지난해 9월 제재를 복원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란 경제는 다시 고립됐죠.
지난해 6월 오랜 갈등 관계에 있던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12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과 전력난까지 겪었죠. 이런 일이 겹치며 이란 경제는 참혹하게 망가졌습니다. 이란 화폐 리알화 가치는 2022년 1달러당 43만 리알이었는데, 지난달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142만 리알까지 추락했습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42% 상승했고, 식료품값은 72% 올랐습니다.
이번 시위로 이란 정부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히잡을 쓰지 않은 이란 여성들은 최고 지도자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사진을 불태워 담뱃불을 붙이는 인증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는 체제에 대한 공개적 저항을 상징하는데, 이란은 지도자의 사진을 태우거나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는 행위를 중범죄로 취급합니다. 인터넷과 통신망을 차단했으나 SNS를 통해 시위 현장 영상은 계속 번집니다. 이란 정부의 힘도 이전보다 많이 약해진 상황이죠.
이에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지난해 ‘Z세대 시위’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각국 지도자가 물러난 것 같은 상황이 이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 개입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이란 당국이 늘 그랬듯 평화적 시위대를 총을 쏴 죽인다면 미국이 그들을 구출하겠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인 지난 3일 베네수엘라를 공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죠. 그러면서 이란에도 똑같이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유달승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에서 소요, 시위, 반정이 일어날 때마다 정권교체나 체제 붕괴가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실화하지 않았다”며 “이란의 지도부가 공고하기 때문에 쉽게 정권이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어 “현실적으로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며 “베네수엘라는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깝지만 이란은 멀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는 지도부 내에서 분열이 일어났고, 내부 동조자가 존재했기에 미국 개입이 가능했다”며 “그런데 이란은 지도부의 분열이 나타나지 않고, 대안 세력이 부재한 상황이어서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