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다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날 오전 박형준 부산시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삭발했습니다.
최효자 범국민부산발전여성협의회 회장을 시작으로 정동만·김미애·김대식 의원이 전기이발기(속칭 바리깡)로 박 시장 머리를 밀었습니다. 박 시장이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삭발은 처음입니다.
정치인 박 시장은 논객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사안을 질문해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답합니다. 그런 박 시장이 머리를 밀었습니다. 그의 말에 삭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평소 저는 논리와 합리로 정치를 풀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삭발하고 단식하는 자해적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적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저는 생각을 달리 먹었습니다."
박 시장이 통과를 촉구한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22대 국회가 개원한 2024년 5월 31일 부산 지역 국회의원 18명 전원이 공동으로 참여해 여야 협치 1호 법안으로 발의됐습니다. 이 법안은 지난 2년 간 국회에 계류됐다가 지난 11일 입법 공청회를 계기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청회를 열고도 16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박 시장은 화살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날렸습니다. "부산을 글로벌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면서 이것을 왜 안 해주느냐. 왜 국가와 부산의 미래가 걸린 일에 발목을 잡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렇다면 박 시장은 오직 글로벌허브 특별법 국회 통과를 위해 삭발했을까요? 사실 이 부분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합니다. 박 시장은 여당인 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울 수 있습니다. 거기서 끝일까요?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느 정도 인과 관계가 배어 있습니다.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는 셀 수 없는 무수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허투루 넘길 수 없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박 시장 삭발에는 여러 동기가 스며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중 대외적으로 드러난 게 글로벌허브 특별법이겠죠. 그렇다면 수면 아래에 숨어 있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6·3 지방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판세를 뒤집으려는 박 시장의 결단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그동안 언론 매체를 통해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박 시장의 지지가 굳건한 편은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3선 도전에 암초가 생긴 것이죠.
거기다 박 시장이 속한 국민의힘에서 박 시장의 공천 배제를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경선으로 결정됐지만 박 시장이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삭발의 효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박 시장이 결기의 정치인이 될지, 아님 구시대적인 발상을 한 정치인이 될지는 부산 시민이 판단할 영역입니다.
현재까지 6·3지방 선거 관련해 3명이 삭발한 것으로 파악됩니다.(혹시 정보의 한계로 틀릴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19일 국민의힘 소속인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공천배제) 항의 차원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또 23일 국민의힘 포항시장 후보에서 컷오프된 김병욱 전 의원이 공정한 경선을 요구하며 삭발했습니다. 이들의 삭발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6월 3일이 지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문득 올해가 2026년이란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삭발은 2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겐 익숙한 행위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머리를 빡빡 민 학생이 흔했고, 시민단체와 학생운동권 등에서는 삭발이 항의와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성적이 부진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삭발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로 바뀌면서 대부분의 영역에서 삭발 문화는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정치를 포함해 몇 군데만 삭발 문화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삭발이란 단어가 사전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21세기와 삭발은 어울리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