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가 승리하는 토론

by 연산동 이자까야


미국 이스턴뉴욕교도소 재소자들과 하버드대 재학생들이 2015년 토론 배틀을 벌였습니다. 주제는 불법 이민자 자녀들의 공립학교 입학 허용 여부. 재소자팀 상당수는 공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주장으로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지난해 6월 홍준표-유시민의 ‘홍카레오 토론’은 격찬을 받았습니다. 보수·진보를 표방한 두 사람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장면은 백미. “사상의 시장이 보장될 때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얻는다”고 설파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 소환되기도 했죠.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의 1차 TV토론은 난장판이었습니다. 트럼프가 잦은 끼어들기로 바이든을 공격했거든요. 그러자 2차 토론회 진행자는 바이든이 말할 때 트럼프의 마이크를 꺼버립니다. 영국 BBC는 당시 “진행자가 승자”라고 촌평.

21764_1630828512.jpg 지난달 KBS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자 토론회 모습. 국제신문DB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 주관 TV토론회 불참을 위해 고의 교통사고를 모의한 혐의를 받은 김대근 전 부산 사상구청장에게 대법원이 최근 당선 무효형을 선고했습니다. 품격 있는 토론은커녕 토론 자체를 거부한 셈. 앞으로는 ‘제2의 김대근’을 막을 수 있을까요. 현행법으로는 어렵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입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토론회에 불참한 후보자에게 부과하는 과태료를 2017년 4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인상했다. 벌금제 도입과 같은 제재 강화는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국정치학회의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토론회 효과 분석’에 따르면 유권자의 98.1%는 TV토론회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토론회 시청을 통해 선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응답도 67.9%. 토론의 ‘토(討)’ 자에는 ‘법도 있는 말’과 ‘치다’ ‘부수다’의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요즘 대권후보들의 날 선 공방을 보면 토론을 ‘부수는 행위’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다 우리나라 TV토론도 진행자만 승리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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