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후

by 연산동 이자까야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고 하는데 태종의 맏아들 양녕과 효령은 왕좌를 거부합니다. 폐세자 신분으로 유랑하던 양녕이 작은 암자에 묵다가 쓴 시 제승축(題僧軸·스님의 두루마기에 쓰다)에는 세상만사 다 부질없다는 심경이 녹아 있습니다. ‘산 안개로 아침밥을 짓고/ 여라 넝쿨에 보이는 달로 등불 삼네/ 외로운 암자 아래 홀로 자니/ 오로지 탑 한 층이 남았구나.’ 고전인문학자 조해훈은 “양녕이 아침 공양도 없는 가난한 암자에서 안개로 밥 짓는 상상을 한다. 마지막 한 층 남은 탑이 자기 모습인 양 느낀다”고 풀이합니다.


세습권력의 시대가 저문 요즘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탈합니다. 9일은 공무원 중 권세가 가장 큰 대통령 투표일. 선택은 유권자의 몫.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민(또는 유권자)을 ‘지배자’이자 ‘피지배자’라고 규정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권리 중 일부를 국가에 양도하는 계약을 했기 때문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뜻. 도스토옙스키는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은 권력에 지배 받으려는 속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는 “인간이라는 불행한 존재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자유의 선물을 넘겨줄 대상을 빨리 찾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근심거리는 없다”고 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우려한 ‘자유의 역설’은 독일에서 현실화. 1932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치당이 37.2%의 득표율로 제1당이 돼 세계를 불행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개인은 올바른 정치인을 선택하는 ‘이성’을 갖춰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이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해야 하는 의무까지 지게 됩니다. 작가 황경민이 ‘투표 이후’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누굴 찍든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니다. 누가 되든 세상은 망하지 않고, 누가 되든 세상은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누굴 찍었든 그 권력을 감시하고 견인하고 비판하는 당신의 행위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끊임없는 비판이 세상을 바꾼다.”


에디터스픽 투표사진.jpg


작가의 이전글젤렌스키의 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