뎁스(Depth). 깊이. 와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Depth of flavor’라고 합니다. 포도 고유의 향인 아로마와 부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 와인평론가인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책임교수는 “어린 와인은 숙성을 거치면서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워진다. 어떤 와인은 3년만 지나도 풍미가 시들해지는데 어떤 와인은 30년이 지나도 ‘영(young)’ 하다”고 합니다. 3년과 30년의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요. 기후·토양은 물론 포도 품질과 양조법까지 다양한 변수가 작용할 겁니다.
올해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던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도 뎁스를 강조합니다. 그는 “올해 칸은 빅스타 마케팅을 많이 했다.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홍보물이 깔려 있더라. 스폰서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칸이 미학적 가치를 존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낯선 풍경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는 올해 BIFF의 방향성에 대해 ‘모순적인 추구’라고 설명합니다. 마이너하지만 의미 있는 아시아권 영화와 상업적인 시리즈물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예술적인 깊이에 대중성까지 더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스포츠에서도 뎁스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됩니다. 요즘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하위권으로 추락하자 “주전들이 줄부상을 당하는데 얇은 뎁스(선수층) 때문에 돌파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부상선수는 10여 명. 정훈은 지난 8일 부상에서 복귀한 지 하루 만에 햄스트링을 다쳐 이탈. 김민수·이학주·고승민·진명호도 부상에 신음 중입니다. 한동희는 햄스트링이 완전치 않아 대타로 출전 중. 내야수 배성근은 퓨처스리그에서 외야수로 출전하는 지경이라고 하네요. 래리 서튼 감독마저 주전들이 한꺼번에 다치자 “크레이지(Crazy)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자이언츠는 몇 년 전부터 어린 선수를 육성해 뎁스를 두텁게 하는 기조를 유지 중입니다. 요즘 이대호만 펄펄 나는 걸 보면 세대교체는 아직 미완성인 듯 합니다. “뎁스가 보강될 때까지 은퇴를 미뤄달라”고 이대호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