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뱅크런'으로 정했어요. 라노는 월급을 받으면 매번 일정 금액을 은행에 저축하는데요. 이는 은행이 라노의 돈을 잘 보관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행의 재정상태가 나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뱅크런은 바로 이와 관련된 현상인데요. 뱅크런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라노가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실리콘밸리 내에 있는 SVB(Sillicon Valley Bank)가 파산했습니다. SVB는 1983년 설립된 미국의 벤처캐피탈 및 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으로 지난해 말 기준 약 209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했으며 미국에서 16번째로 크고, 실리콘밸리 내에선 가장 큰 은행이었죠.
SVB는 벤처기업과 임직원의 예적금을 받아 다시 유망 벤처기업에 대출 및 벤처기업 금융 중개·지분투자를 해왔습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이 돈을 또 다른 기업에게 지원하는 사업구조입니다. 기술력은 있지만 경영 역량이 부족한 벤처기업에 각종 컨설팅, 행사유치,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도 제공해왔습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으로 자금난에 몰린 미국 스타트업 기업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SVB는 유동성 확보에 난항을 겪기 시작했죠.
지난 10일 SVB의 지주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추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으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를 어쩔 수 없이 매각했고, 이로 인해 18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주가가 60% 이상 폭락하고, 뱅크런이 발생해 결국 하루 만인 지난 11일 파산으로 이어졌습니다. SVB와 같은 대규모 은행이 폐쇄된 사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죠.
여러분은 은행에 돈을 믿고 맡겼는데 은행의 재정이 불안정하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은행이 파산할지 파산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지켜만 볼 수는 없으니 일단 예금을 모두 빼야겠죠. 이는 은행에 돈을 맡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거나 거래 은행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은 예금을 인출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게 돼 은행에서 당장 돌려줄 돈이 바닥나는 패닉 현상을 겪게 되죠. 이와 같이 단기간에 은행 예금을 인출하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태를 '뱅크런(bank run)'이라고 합니다.
IMF를 겪어보신 분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은행 재정 상태가 나빠지자 사람들이 은행에 몰려 너도나도 예금을 인출하려는 모습을요. 은행에 꽉 들어차게 모여서 먼저 돈을 찾으려 아우성이었던 장면은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뱅크런이 바로 IMF 때 벌어졌습니다. 많은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했죠.
그렇기 때문에 보통 뱅크런이라고 하면 기나긴 은행 대기줄, 난장판이 된 은행 내부, 오고 가는 고성, 은행 영업시간 전부터 은행 앞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실 텐데요. SVB의 뱅크런은 달랐습니다. 달라진 은행 환경 때문이었죠. 예전에는 은행에 직접 찾아가 돈을 인출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지만 모바일 뱅킹이 잘 발달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큰 규모의 은행이었던 SVB가 파산하는 데까지 36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스마트폰 뱅크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SNS에서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소식이 빠른 속도로 확산했고, 겁에 질린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예금주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스마트폰 뱅킹 앱을 열고 손가락 몇 번 움직여 예금을 인출해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예금주들은 은행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420억 달러(한화 약 55조 6000억 원)를 인출하려고 시도했죠.
SVB가 주요 금융기관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40여 년이 걸렸지만, 붕괴하는 데는 36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은행 사용 환경이 바뀌면서 벌어진 사태로 보입니다. SVB의 파산이 국내 금융 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