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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by 연산동 이자까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우리는 오랜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딛고 선 땅 위에 뿌리내리고 있어요. 이곳은 대한제국이었고, 조선이었으며, 고려이기도 했어요. 백제 고구려 신라가 될 때도 있었고, 고조선이었던 적도 있었죠. 우리가 이처럼 역사를 알고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21764_1695546383.png 함안 말이산고분군의 전경. 허시언 기자

자체적인 역사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잊힌 왕국'으로 불리던 고대 문명 가야의 대표 고분 유적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가야고분군 등재는 10여 년 만의 결실입니다.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이후 등재추진위원회가 2021년 유네스코로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유네스코 자문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현지 실사 등 심사를 거쳐 지난 5월 등재 권고 의견을 받아냈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가야고분군'을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위원회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인정된다"고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이유를 밝혔습니다.

21764_1695545709.png 가야고분군 7곳의 위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영호남 지역에 분포했던 고분군 7곳을 묶은 연속유산입니다. 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묘역으로, 가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대 유적이죠. 가야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한반도 남부에서 500년 이상 존속한 고대 국가입니다. 5세기 후반에는 삼국시대의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전성기를 누렸죠. 하지만 6세기 초반에 이르면서 가야 백제 신라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고, 가야는 백제와 신라의 압박을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가야는 외교를 통해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의 한강 하류 지역을 점령하고 신주를 설치함으로써 백 년 넘게 지속되던 나제 동맹이 와해됐고, 554년에는 백제와의 관산성전투에서 승리한 뒤 큰 장애물 없이 가야로 진출했습니다. 결국 6세기 중엽, 가야는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562년 대가야를 끝으로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습니다.


가야는 중앙집권화된 국가 체계를 이루지 않고 10여개 왕국의 연맹체로 낙동강 일대에서 문명을 이뤘습니다. 500년 이상 문명을 유지했지만 옛 문헌에 남은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적은 기록마저도 단편적이거나 일부에 그쳐 역사적 해석이 분분합니다. 기록이 얼마 남지 않아 가야사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가야고분군의 가치는 절대적입니다. 가야고분군은 사라진 가야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으로 의미를 지니죠.


연맹 체제를 유지했던 가야의 각 정치체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했습니다. 이 고분군들은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가야고분군은 입지와 경관, 묘제의 변화, 부장유물을 통해 가야 사회의 내부 구조, 발달한 기술,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보여줍니다.

21764_1695545720.jpg 말이산 45호분 출토 상형도기 일괄. 허시언 기자

가야고분군에서는 가야인들의 뛰어난 토기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토기가 여럿 출토됐습니다. 배나 집, 말을 탄 인물 등 독특한 모양을 가진 것이 많고, 그릇은 받침이 높고 다리가 있으며 깊지 않은 형태가 관찰됩니다. 가야의 토기는 주변 나라로 확산됐는데, 가야와 주변국 간의 정치·문화적인 관계를 추적하는 근거가 됩니다. 가야는 제철기술로 흥했습니다. 가야고분군에서 출토된 무기, 갑옷, 마갑, 장신구, 농기구 등을 통해 당시 가야의 뛰어난 주조 기술과 세공 기술을 확인할 수 있죠.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가야 역사의 비밀이 가야고분군을 통해 일부 확인됐습니다.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가야사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라는 것을 인정받고 세계적인 문화 자산이 됐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 당시 동북아시아는 중앙집권체제로 나라를 운영했습니다.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고구려 백제 신라도 중앙집권화된 국가체제를 유지했지만, 가야는 연맹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정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한 것 자체가 특이한 현상이죠.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연구실장은 "가야 문명은 당시 동북아시아에 왕조 중심의 고대 국가만 있는 것이 아닌, 연맹 체제 국가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라며 "가야는 동북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하 연구실장은 가야고분군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통합적인 관리·홍보·모니터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야고분군은 경남 경북 전북 등 각자 다른 지역에 분포해 있습니다. 유네스코 지정 전에는 각자의 지자체에서 관리를 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7개의 가야고분군을 연속유산으로 취급해 등재한 지금은 통합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죠. 하 연구실장은 "가야고분군 관리를 담당하는 독자적인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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