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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 막는 불법주차,
강제처분은 6년간 '4건'

by 연산동 이자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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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아직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지만, 운전자들 사이에서 항상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라노네 집은 지하주차장이 없고 지상에만 주차장이 있는데요. 주차 공간에 여유가 없다 보니 차가 다니는 길목이나 소방차전용구역을 침범해 차를 대놓기 바빠요. 차가 빼곡하게 주차돼있는 밤이나 주말에는 차 한 대도 오고 가기 힘들 정도죠.


이러한 불법주차는 소방차의 통행을 막아 화재 현장 내로 진입을 어렵게 만듭니다. 불법주차에 따른 소방차 진입 불가는 화재 발생 시 대규모 참사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소방차의 진입을 막는 차량들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2015년에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며 피해가 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5명의 사망자와 12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죠. 2017년 충복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역시 불법주차된 차량들로 소방차 진입이 막혀 진화 작업이 지연됐습니다. 긴급한 상황임에도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해 2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2018년 3월 소방기본법이 개정됐습니다. 소방기본법 제25조3항에 '소방본부장, 소방서장 또는 소방대장은 화재진압 및 구조구급을 위해 주차 또는 정차된 차량 및 물건 등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며 화재 현장 진입을 막는 차량을 부수는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죠. 하지만 2018년 6월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실제 불법주차된 차량을 강제처분한 사례는 ▷서울 2건 ▷인천 1건 ▷충남 1건 등 전국적으로 4건에 불과합니다.


부산지역에서는 불법주차 강제처분을 집행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부산은 도로 폭이 3m 이하의 소방차 진입이 힘든 구역을 '진입곤란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강제처분 없이 대응 가능하다는 것.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처분 집행이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장 소방공무원들은 강제처분 집행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집행 이후 소방관이 겪을 민·형사 소송과 그에 따른 불이익을 꼽았습니다. 강제처분, 손실보상 등과 관련해 소방관의 집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죠.


소방기본법에서는 '법령을 위반해 소방차의 통행과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된 경우에는 강제처분 집행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법 주정차가 확실한 차량에 한해서 강제처분을 해야 손실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만약 불법 주정차가 아님에도 강제처분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 소방 측에서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강제처분이 전국적으로 거의 집행되지 않는 원인으로 민원 부담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실무자들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며 강제처분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습니다.


국립소방연구원의 '소방현장 강제처분 실행력 제고를 위한 설문조사 통계 분석보고서'를 보면 현장 소방공무원 1만4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강제처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소방공무원 91.6%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소방공무원 74.5%는 강제처분의 현장 적용에 대해 '잘되지 않는다'고 답했죠. 그 이유에 대해 42.5%가 '사후 처리 과정상 행정적·절차적 부담'을 꼽았습니다.


"강제처분 집행을 한 뒤 '불법주정차가 아니었다'고 밝혀지면 소방관 개인이 모든 민원과 소송을 감당하는 구조가 잘못된 것입니다. 업무상 꼭 필요해서 강제처분을 집행했다고 해도 개개인이 면책을 받기 위해 증명하는 과정이 너무 까다롭죠. 그렇게 되면 소방관이 '내가 소방 호수를 좀 더 오래 끌고 가는 게 낫지' '좀 더 빙 둘러서 소방차를 운전하는 게 낫지' 라고 생각하며 강제처분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강제처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국가나 소방본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맞습니다." 동의대 류상일(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강제처분에 대한 소극적 대처와 불법주차 문제는 결국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온다고 경고했습니다. 화재에 대한 대처가 늦어질수록 불은 늦게 꺼지고, 피해는 커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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