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조리한다'고 하지만, 술은 '빚는다'고 합니다. 곡식과 누룩 효모 등을 버무려 완전히 새로운 물질인 알코올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고대에 술을 만드는 능력은 신성(神聖·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에 비견될 정도로 고귀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신성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맥주의 나라' 벨기에의 루뱅대 연구진은 AI를 활용하면 진짜 맥주보다 더 맛있는 무알코올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전문 패널 16명에게 다양한 종류의 상업용 맥주 250종을 시음해 맥주별 홉, 맥아, 향신료 등 50가지에 달하는 속성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온라인 맥주 평가 플랫폼에서 동일한 맥주 250종과 관련한 리뷰 18만 건을 수집해 맛 평가에 대한 데이터를 보완했습니다. 알코올의 함량, 수소이온농도(pH), 설탕 농도 등을 비롯해 220여 가지에 달하는 맥주의 다양한 화학적 특성에 관한 데이터까지 혼합하자 '화학적 데이터를 감각 특성과 연결 짓는' AI 기반 예측 모델이 나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무알코올 맥주'는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기성품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기존 상업용 맥주에 AI 모델이 예측한 특정 향을 추가한 ‘변형 맥주’도 기존 맥주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케빈 페르스트레펀 루뱅대 교수는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더 나은 무알코올 맥주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모델을 활용해 숙취의 위험 없이 알코올의 맛과 냄새를 모방한 칵테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했습니다. 논문의 주저자인 미힐 스뢰르스 연구원은 "몇 가지 화합물만 측정해서는 맥주가 얼마나 좋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컴퓨터의 힘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각은 '싫은 것은 알아도 좋은 것은 나도 모르는'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변덕스러운 감각입니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AI는 이 영역마저 차근차근 정복해 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곧 AI가 만든 미각적으로 완벽한 음식이 등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는 내 미각을 알 정도로 모든 것을 알아채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