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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Jul 05. 2024

'친족상도례', 이거 아나?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친족상도례'로 정했어요. 친족상도례는 의외로 고대 로마법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서 근대적 형법으로 다뤄졌고, 독일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쉽게 말해 가족 내에서 벌어진 재산 범죄는 법원까지 끌고 오지 말고 가족 내에서 처리하라는 뜻입니다.

형법 328조에 규정된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등 친족 사이에 발생한 사기·횡령·배임 등의 재산 범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특례입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가까운 친족 사이는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친족 간의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습니다. 돈을 훔쳐봤자 액수가 크지 않고, 대가족 체제에서 자정적인 문제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화가 심화됐죠. 경제생활의 형태도 크게 변하고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친족상도례는 오히려 피해자를 울리는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조항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죠.


친족상도례가 주목받은 건 2021년 연예인 박수홍 씨가 횡령 혐의로 친형을 고소하는 일이 일어나면서부터입니다. 검찰은 박 씨의 친형과 형수가 2011~2021년 박 씨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면서 회삿돈 등 61억7000만 원을 횡령했다고 보고 기소했습니다. 그러자 박 씨 아버지가 "자금 관리를 내가 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 박 씨 측은 아버지가 친족상도례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박세리 씨도 부친의 사문서 위조로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됐습니다. 박세리희망재단은 부친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죠.


가족 사이의 재산 범죄는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매년 약 800명가량이 친족에 의해 재산범죄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친족상도례 때문에 피해를 보았지만, 가해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공분을 샀습니다.


헌재는 친족상도례가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고 재판관 9명의 만장일치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습니다. 헌재는 헌법 불합치 결정 이유로 해당 조항이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등 친족관계에 있으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또 가족 간에 벌어지는 재산 분쟁이 '중한 범죄'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죠.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처벌을 피하는 건 현재 우리 사회와는 맞지 않다는 것.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원 등 국가기관에 친족상도례 조항의 적용을 즉시 중단시켰고, 2025년 12월 31일까지는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법이 개정되지 않더라도 2026년 1월 1일부터는 법이 효력을 잃게 되죠. 늦어도 2026년 1월 1일부터는 가족 간 재산 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들이 법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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