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중장년이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는 신념을 노래와 수업을 통해 배웠습니다. 한겨레는 이른바 '단일 민족'을 말합니다. 혈통을 따졌을 때 우리가 단일 민족이 맞느냐 아니냐,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시기가 언제냐에 관한 역사적 논쟁은 일단 뒤로 미루시죠.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할까 합니다.
우리가 단일 민족을 강조했던 이유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민족과 국가의 단일성·통일성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적잖게 기여했습니다. 단일 민족은 우리의 자부심과도 같았고, 일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자주 국가를 세우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단일 민족은 내부적으로 우리 국민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용도로도 사용됐습니다. 달리 말해 다른 문화권의 외국인을 배척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외국인의 국내 유입을 우려하거나, 그들과 우리 국민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혼혈'이라 부르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농촌 인구 급감과 성비 불균형, 3D 업종 구인난 등으로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크게 늘면서 상황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생겼고, 그들을 지원하는 법률도 제정됐습니다. 이제는 '같은 한국인인데 굳이 다문화라는 용어로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금은 이에 더해 지역 소멸 위기감에 휩싸인 지자체마다 외국인을 향한 '구애'에 한창입니다. 부산시는 외국인 유학생의 정착을 유도하려고 내년부터 예산을 투입해 취업과 창업을 지원합니다. 지역의 정주 인구를 늘리고,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그동안 유학생 유치와 재학생 취업 지원은 있었지만, 졸업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동구 역시 부산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자녀를 둔 가정에 보육료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제도 도입 배경은 똑같습니다.
10여 년 전 미국 출장 때 겪은 일입니다. 일행을 기다리며 샌프란시스코 해변 어딘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봐도 미국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와서 ○○식당으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며, 난생처음 미국 땅을 밟은 저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그 미국인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곧 오지 않을까요. 길에서 마주친 외국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길을 물어보는 그런 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