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 고운 님 함께라면 줄거웁지 않더냐 /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록밴드 '들국화'가 불러 잘 알려졌죠. 아마 아시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눅눅한 분위기 속에도 희망을 노래합니다. 여기에서 집은 사랑하는 가족과 오손도손 고된 일상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비가 새는 비좁은 방이라도 가족과 등 붙이고 쉴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보금자리'입니다. 새벽녘, 이 집에서 함께 눈을 뜬 가족은 뜨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치의 희망을 꿈꾸겠죠. 우리에게 집은 마땅히 그런 곳이었습니다.
너무 옛날얘기를 했나요. 이제 집은 '최고의 투자 대상' '계층 이동의 수단' '확실한 노후 준비'쯤으로 여겨집니다. 집의 위치와 높이, 안팎의 번지르르함이 소유주의 사회적 지위를 대신 가늠하는 척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평생 번 돈을 한 푼 쓰지 않고 모아도 똘똘한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내 집 마련이 힘든 서민이 부지기수지만, 1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부동산 부자도 많습니다. 이런 통계가 있네요. 지난해(이하 11월 1일 기준) 부산에서 집을 2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가 16만8561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했습니다. 부산지역 전체 유주택자 105만1261명의 16.0%에 달합니다. 5채 이상 소유자도 9892명이나 되는데요, 역시나 16개 구·군 중 '부자 동네' 해운대구(1339명)에 가장 많이 삽니다.
가구 기준으로도 살펴볼까요. 부산 전체에는 146만2404가구가 있는데요, 이 가운데 집을 1채 이상 가진 유주택 가구(84만5691가구) 비율이 57.8%입니다. 무주택은 61만6713가구로 전체의 42.2%네요. 절반이 조금 안 되는 가구가 자기 집 없이 전월세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역대 최다인 부산 다주택자 수를 고려하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몇 달 전 노후 설계 전문가로 유명한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연 중 이런 통계가 언급됐습니다. 각국 가계의 부동산과 금융자산 비율인데요. 지난해 기준 한국은 부동산 76% > 금융자산 24%, 반대로 미국은 부동산 34% < 금융자산 66%입니다. 일본 역시 2020년 기준 부동산 37% < 금융자산 63%로 조사됐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의존율이 매우 높죠.
강 대표는 바로 이어서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3대 도시의 택지 가격 지수(1982년=100)를 소개했습니다. 이 지수는 1991년 290까지 치솟았다가 점점 하락해 2020년 120까지 떨어졌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단독주택 위주여서 집값 관련 통계를 택지 가격으로 산정한다고 하네요.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이런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는 판단이 있습니다. 여기에다 생산가능인구의 급감,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등 정책 실패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강 대표는 이런 통계를 근거로 "일본에서는 1980년대 버블 경제가 무너진 뒤 주택이 재테크에서 주거 수단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앞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기보다 노후에 누구와 어디서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문득 집이 참 '요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마다 식구들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으면 최고의 행복이다 싶다가도, 남들처럼 넓고 높고 호화로운 저택을 갖고 싶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올라서고 싶은 인생 목표이기도 했다가, 결국은 빚더미에 올라서고. 집값은 오르면 올라서 문제, 내리면 내려서 문제, 정체되면 정체돼서 문제. 참말로 난제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한 거 같아요. 이제 집은 '투자'나 '투기'가 아니라 '주거'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적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시민이 행복해진다는 것.
여러분은 어떤 집에 살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