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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통령, 그들의 메시지

by 연산동 이자까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내란 수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됐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건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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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을 포함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역대 대통령은 3명입니다. 앞서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었죠. 이들 3명은 탄핵안 가결 전후 여러 형식으로 메시지를 냈습니다. 윤 대통령을 제외하면 비교적 간결했는데요.


순서대로 보시죠. 노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안 표결이 이뤄진 2004년 3월 12일 "잘잘못을 떠나 국민 여러분께 오늘과 같은 대결 국면에 탄핵 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국가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잡힌 오후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면서 "제가 직무 정지가 되는데 오늘 저녁까지는 괜찮다"며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괴롭기만 한 소모적인 진통은 아닐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10분 가결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53분 국무위원 긴급 간담회를 소집했는데요. 담담하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하겠다."


잘 아시다시피 헌재는 두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은 탄핵을 기각했고, 다른 한 명은 인용했습니다. 이들 전직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가장 먼저 "국민께 죄송하다, 송구하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러고는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럼 탄핵안이 가결된 3번째 대통령의 메시지는 어떨까요. 윤 대통령은 때마다 부당함을 호소했고, "싸우겠다"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지난달 7일 국회의 탄핵안 첫 표결 직전엔 "국민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렸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저 탄핵안 가결을 피하기 위한 '위장술'이었을까요.


불과 닷새 뒤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여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직전과 달리 내용이 길었습니다. 거친 표현도 많았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된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어떻게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나… 저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 담화는 오히려 탄핵안 통과 가능성을 키웠습니다. 결국 이틀 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죠. 그러자 윤 대통령은 또 한 번 짧은 담화를 냈습니다.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윤 대통령은 이후 공수처의 수사, 체포영장 청구·발부·집행 모두 불법이라며 버텼습니다. 메시지는 계속됐는데요. 15일 체포되기 직전엔 녹화 영상 형식으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내놨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불미스러운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서 일단 불법 수사이기는 하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가 이 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더해 체포 직후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에서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12·3비상계엄을 두고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고 했습니다.


네,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수많은 메시지를 내면서 사과나 반성을 우선하지 않았습니다. 국정 혼란을 걱정하는 발언도 찾기 어렵습니다. '저의 부덕과 불찰' '책임 통감' 등 리더로서의 미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 탓, 핑계, 해명, 항변 등이 주를 이룹니다.


유명한 보수 논객이죠. 월간조선 편집장 출신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의 말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조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 "목숨 걸 용기도 없고 하야할 용기도 없으면 계엄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수사에 협조해 시간 끌지 않고, 대통령답게 남자답게 보수답게 행동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은 자기밖에 생각 안 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 같다. 최소한 부하들, 국가, 국민의힘을 생각한다면 이렇게는 행동 안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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