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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 정국의 '맥거핀'

by 연산동 이자까야

스코틀랜드행 열차를 탄 두 남자가 대화합니다.
남자1 "선반 위에 저것이 뭡니까."
남자2 "맥거핀입니다."
남자1 "맥거핀요?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남자2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사는 사자를 잡기 위한 도구입니다."
남자1 "스코틀랜드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남자2 "아, 그럼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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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로 영화에서 사용되는 '맥거핀(MacGuffin)'의 유례입니다. 맥거핀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속여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위장술'입니다. 끝나고 보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뭔가 대단한 게 있는 듯이 이야기를 끌고 가죠. 최근 한 영화감독이 SNS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을 두고 맥거핀을 언급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과연 이번 사태에 맥거핀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사태는 지난해 12월 3일 발생한 '6시간짜리 정치 드라마'에서 비롯됐습니다. 핵심은 대한민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12·3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한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또 비상계엄을 선포한 행위와 과정이 대통령으로서 직권을 남용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직 종영하지 않은 이 드라마에는 수많은 맥거핀이 존재합니다. 슬그머니 이야기의 큰 줄기는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헌법재판관의 개인 성향 논란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미임명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진행에 대한 여당과 윤 대통령 측 반발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에 가담한 20, 30대 청년 ▷헌법재판소·서부지법 난동 사전 모의 수사 ▷부정선거와 중국 개입설 ▷윤 대통령 구속·체포영장 발부의 적법성 시비 ▷때마다 나오는 윤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 ▷내란 특검법 국회 통과와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조기 대선 가능성을 둘러싼 여야 셈법 등 다양한 맥거핀이 본질을 가립니다.


맥거핀은 극적 긴장감을 돋우고, 호기심을 자극해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이런 맥거핀은 드라마나 영화에 많아야 한두 개면 족합니다. 비상계엄에서 시작된 탄핵 정국 드라마의 맥거핀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10일에도 갖은 맥거핀이 있었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 보류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변론 재개로 공방이 가열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 특히 청년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구치소에 면회 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서부지법 난동 가담자의 과반이 20, 30대라는 집계가 나온 이후 윤 대통령의 '청년 보듬기'는 계속됩니다.


이뿐 아니죠.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까지 헌법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폭력이 난무한다. 헌법 원리를 부정하는 '반헌법, 헌정 파괴 세력'이 현실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라며 '헌정수호연대'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여당은 이 대표가 제시한 정책들을 두고 "오로지 집권을 위해 남발하는 사실상의 부도수표"라고 따졌죠.


이날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안건 상정을 앞둔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 회의장 길목을 점거했는데요. 안건 상정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회의 저지를 막겠다며 실력 행사에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인권위 전원위원회 회의실 진입을 시도하며 직원·경찰과 대치하기도 했죠.


또 국회 사무처는 이 대표의 의원직 제명, 이미선 정계선 헌법재판관의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어 성립 요건을 채웠다고 이날 밝혔습니다. 날이 갈수록 탄핵 정국의 기승전결 대신 맥거핀이 난무하고, 우리 사회는 정확히 두 쪽으로 양분된 양 갈등을 빚습니다.


이제 빠른 결론이 필요해 보입니다. 맥거핀은 맥거핀으로 끝나야 합니다. 스코틀랜드행 열차 안 '남자2'의 말처럼 맥거핀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야 합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살얼음판을 걷는 경제가 어서 제 자리를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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