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우리의 '영웅'

by 연산동 이자까야

80년 전,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27일. 부산소방서(현 중부소방서) 고(故) 김영만 소방관(소방원)은 비번이라 집에 있었습니다. 마냥 쉰 게 아닙니다. 부산 중구 영주동 고지대에 자리한 집을 '망루' 삼아 소방서가 있는 중구 동광동 일원과 부산항 주변을 살폈죠. 그때 저 멀리 '적기(남구 감만동)'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습니다. 불이 난 곳은 일본 육군 군수품 보급 창고.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즉시 소방서로 달려가 장비를 챙긴 후 출동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창고는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선임 소방원이었던 그는 관창수로 자원해 맨 앞에 섰습니다. 그 순간 '꽝'하는 굉음과 함께 창고 안 군용 폭발물이 터졌고, 스물일곱 살 청춘 김영만 소방관은 불길과 함께 산화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 순직 소방관이 됐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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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이나 81년이래서 의미가 덜하겠습니까만, 올해 광복 80년을 맞아 우리의 '영웅'을 기리는 정성이 곳곳에서 모입니다. 결이 조금 달라 보일 수 있지만, 김영만 소방관 얘기를 먼저 꺼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순직이 일제 강점과 연관됐는데도, 부산시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자료에 그의 기록이 잘 남아 있습니다. 김영만 소방관은 당시 부산부 상수도 관리원으로 일하다, 1939년 소방 직원 증원에 따라 수도소화전 관리 경력 소방원으로 임용됐다고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동시에 일본인 소방관이 인수인계도 없이 도망치듯 돌아가, 부산소방서에는 그를 비롯한 한국인 소방관 소수만 남아 동분서주했다죠.


화재로 그의 목숨을 앗아간 군수품 보급 창고 역시 일제 강점의 잔재입니다. 일본군이 내뺀 이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죠. 특히 군대 폭발물은 별도 시설이나 무기고에서 관리해야 하는데, 도망하느라 다급한 일본군이 피복류 등을 보관하는 일반 군수품 창고에다 감춘 겁니다.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최초의 순직 소방관인 그를 광복과 함께 기억해야 할 근거입니다.


김영만 소방관은 아내와 2남 1녀를 두고 그렇게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은 동료들이 수습했고, 미 군정이 마련해준 북구 만덕동 장지에 안장됐는데요. 1990년대 만덕지구 택지개발 사업 때 사라져 아직 유해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에 소방청은 김영만 소방관의 마지막 출동 순간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영상으로 복원했습니다. 오는 15일 광복절에 유튜브 '소방청TV'에서 공개합니다. 광복 전후 우리나라 성장과 도약,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한 영웅을 제대로 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외에도 부산에서 우리의 영웅을 기억하는 행사가 광복 80년을 물들입니다. 개성고등학교는 14일 항일 학생운동 선배들의 명예졸업식을 진행합니다. 비록 생존자는 확인되지 않지만, 항일 학생운동에 나섰다가 제적 등으로 졸업하지 못한 선배 117명이 주인공입니다. 일제강점기 개성고(당시 부산제2상업학교) 재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항일 투쟁을 펼쳤습니다. 1928년 6월 18일 식민지 교육제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교생이 동맹휴학을 벌였다가 188명이 퇴학당하고, 192명이 정학 처분받았습니다. 특히 1940년 11월 23일 동래중학교(현 동래고) 학생들과 함께 이른바 '노다이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항일학생의거를 주도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6·25전쟁 참전 후 복학하지 못한 34명도 이날 명예졸업장을 받습니다.


부산 시민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일본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수요집회를 열었습니다. 광복 80년인 올해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6명, 평균 95.6세입니다. 부산에는 2020년 8월 고 이막달 할머니의 작고 이후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해준 영웅들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광복 80년 대한민국이, 영웅들이 목숨 바쳐 만들고자 했던 나라의 모습을 갖췄는지도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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