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산불·냉해 이기고 미국 가는 우리 '배'

by 연산동 이자까야

1996년 10월 재밌는 기사가 보도됩니다.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가 한국에서 첫 공연을 펼쳤는데요. 당시 나인수 나주시장은 그에게 나주 배를 선물합니다. 나주시 공무원 2명이 배 10상자를 차에 싣고 서울로 가서 공연 기획사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가을, 제철 맞은 나주 배가 얼마나 맛있었겠습니까.


나주시가 배를 선물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내한 중 나주 배를 맛본 마이클 잭슨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먹었다는 선악과가 이처럼 맛있을 수 있을까"라고 감탄했다는 얘기가 전해진 거죠. 이 일화는 나주 배의 진미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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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 흐드러지게 피우는 배나무의 열매. 누르께한 껍질을 벗기면 그 꽃만큼이나 희고 단단한 과육을 드러냅니다. 한입 깨물면 주르르 흘러내리는 과즙. 아삭아삭한 식감에 시원한 단맛이 일품이죠. 조롱박을 닮은 모양에다 푸석푸석, 물렁물렁한 서양 배와는 비교할 수 없죠.


우리 배는 쓰임새도 참 다양합니다. 고기와 궁합이 좋아 육회에 꼭 곁들여집니다. 물김치나 냉면 육수 등에도 빠지지 않죠. 배즙은 그냥 먹기도 하고, 수많은 요리에 사용됩니다.


나주 배가 워낙 유명하지만, 울산 울주 배도 못지않습니다. 특히 올해 울주 배는 갖은 시련을 이기고 아주 알차게 영글었습니다. 지난 3월 22일 울주군 온양읍에서 발화한 '괴물 산불'은 129시간 동안 산과 들을 새까맣게 태웠습니다. 가까스로 화마를 피한 배밭엔 개화기 냉해가 덮쳤죠. 이에 울주군은 산불 열기를 식히려 피해 과수원에서 드론을 활용한 배꽃 인공 수분 작업을 하고, 개화기엔 저온 피해를 막으려 과수 영양제를 지원하며 공을 들였습니다.


울주 배나무는 농민과 행정의 이런 노력에 보답했습니다. 보란듯이 단단한 열매를 맺었는데요. 지난 13일 온양읍 노동열(69) 씨 과수원에서 첫 햇배를 수확했습니다. 이번에 거둔 결실은 조생종 '원황' 품종. 일반 배보다 크고, 당도가 높습니다. 껍질이 얇고 과육도 단단해 맛과 보관성이 뛰어납니다.


시련을 딛고 자란 울주 배가 18일 '마이클 잭슨의 나라'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미국인 입맛을 홀리려 떠난 배는 '원황' 13.6t, 6500만 원어치. 울산원예농협은 오는 12월까지 '황금' '신고' 품종까지 울주 배 400t, 17억 원가량을 수출할 계획입니다. 또 울주군은 오는 11월 홍보단을 미국에 파견해 현지 시식회 등을 열고 울주 배의 우수성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울주 배가 미국 가는 배를 탄 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하는 50% 품목관세 적용 범위를 407종 파생 상품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날 관련 종목 주가는 줄줄이 내렸고, 우리 산업의 피해도 우려됩니다. 농산물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 번 관세 협상 때 농산물·디지털 분야 등의 '비관세 장벽' 이슈를 모호하게 남겨뒀습니다. 미국이 조만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비관세 장벽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농산물 추가 개방을 압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방어했던 미국산 사과·배가 우리 시장을 공습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갈수록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힘을 내고, 지혜를 모아야겠습니다. 우리 농산물이 마이클 잭슨은 물론 세계인을 사로잡을 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않았습니까. 괴물 산불, 저온 피해 따위 거뜬히 이겨낸 울주 배처럼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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