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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길을 갈 때

by 미국의 할배

요즘 나는 앞에 안개가 가득 낀 바다를 작은 돛단배에 의지해 저어 가는 느낌이다. 분명 가야 하는 목적지는 있는데 그곳을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위태로운 돛단배에 몸을 의지해 물길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앞을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고 지나온 뒤를 보아도 물보라가 사라진 흔적도 없는 잔잔함만 남아 있다. 내가 저어 왔으므로 지나온 길이 분명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묻는 그 누구에게도 정확히 길을 제시할 수도 없다. 다만 어림잡아서 내가 지나온 방향을 겨우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가야 하는 목적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곳을 가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좀처럼 정확한 길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젓던 노를 멈추고 방향을 다시 잡아보지만 그 방향조차도 알아낼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제자리에서 빙빙 맴돌 듯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어떤 때는 뒤로 가는 듯이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느 때는 평탄 대로를 찾은 듯 앞이 환하게 보이는 듯할 때도 있기는 하다.


즉 나는 지금 길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나온 길이 정확한 길 같아 보이지만, 그 지나온 그것조차 길을 묻는 그 누구에게도 이 길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 만큼 선명하지도 않다. 그렇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자신이 정한 목적지를 향해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방향조차도 알지 못하고 이길 저길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미 확실한 길을 찾아 힘차게 앞서 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모두 함께 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각자가 자기 길을 혼자서 외롭게 가는 것이다.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나갔기에 잘 알려진 길 같지만 사실은 모두에게 초행길이며, 그렇기 때문에 가면서 길을 잃어 배회하기도 하고 앞으로 가는 듯 보이지만 뒤로 갈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헤매고 있을 때에도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제는 이곳저곳을 헤맬 시간이 나에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한번 잘 못된 길로 들어서면 그 길을 다시 시작해서 걸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다만 그 위치에서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 내가 한 발을 내 디디면 그 지나온 길은 다시 걸어볼 기회가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하루 앞으로 나아갈 때, 아니 옆으로 또는 뒤로 갈지도 모르지만 신중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목적지만 확실하다면 쉬지 않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자신이 목적했던 곳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가 멈춘 곳이 바로 우리가 원했던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아니면 잘 못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서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힘겹게 왔는데 그 길이 잘 못 되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 험난한 길을 갖은 고생을 해서 도착한 목적지가 잘 못 되었다면 얼마나 허탈하고 후회스럽겠는가?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찾기도 어렵고 가기도 어렵다는 그 길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분이 있다. 그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신다. 그래서 그 길을 아무 의심 없이 걸어가고 싶은데 그 조차도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분이 길이라고 말씀하신 방향으로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희미한 길을 찾아 오늘도 조금씩 움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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