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5월20일 군산에 안치하였든 아버지의 유골함을 서울 봉황공원으로 모셔왔다. 전날 형님과 우성이가 군산에 내려가서 모셔온 것이다. 몇년전에 아버지의 유골을 화장하여 군산시립 납골당에 안치하였든 것이다. 이제 어머니 유골과 함께 야외 납골당에 같이 안치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마님은 내가 광주보건대학에 부임하든 1979년 3월이다. 이제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또 납골당에 4분을 더 모실수가 있다. 나머지 자리에는 형님 내외, 우리 부부가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죽은 후의 장지는 해결 된 셈이다. 현대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에게 효도를 하여야하는 시대에 접어든 느낌이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죽는 것도 어느 의미에서 부모자식간에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놓고 이세상을 이별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식들이 부모을 조금이나마 그리워 할 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하였다. 효도라는 것이 부모를 향한 것만이 아니고 자식에게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나를 다시한번 사람 살아가는 길을 반추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형제지간, 남에게 서름을 받지 않고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더욱이 자식들이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재산문제로 싸우는 것이 다반사다.
다행이도 우리 집은 그런 다툼이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자기가 죽기전에 이것을 분명히 안하면 내가 막내인 내가 제일 피해를 볼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미리부터 준비를 하셨다.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 앞으로 집을 만들어 주셨든 것이다. 물론 다른 형제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재산의 일부를 도와왔든 것이다. 재산 중에서 나의 재산을 다른 형제들이 손을 못되는 것이 부동산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집을 내 앞으로 한것이다. 어머니는 미래를 생각하는 분이었다. 비록 우리가 남한으로 피난하였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우리의 재산을 되찾고 옛날의 부자로 돌아가는 꿈을 많이 꾸셨든 것 같다.
이제 아버지의 유골을 야외 납골당에 모시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따로따로 돌아가시어 군산과 서울에 떨어져 계셨다. 옛날분이라 지금처럼 애뜻한 정이야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리워하는 정은 많았으리라 본다. 어머니가 그렇게 아버지 비석을 그럴듯히게 세웠으면 하고 바랬으니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제는 오랫동안 떨어져 계셨지만 앞으로는 사이좋게 오순도순 편히 영원히 쉬셨으면 바란다. 우리 내외가 어마님, 아버님 곁으로 가게 될 때까지 편안히 계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