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생겼다. 도서관에서 돌아온 내 앞에는 이제 두 돌이 가까운 작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도어록 잠금을 풀고 들어온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TV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뉴스 소리만 들리던 거실에는 뽀로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축 처진 몸을 끌고 갔더니 할머니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기의 장난감을 들고 그 아이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양말을 벗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할머니께 물었다. “얘 언제까지 있어요?” 할머니는 내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제부터 여기서 살아.”라고 말하며 무언가 어색한 미소를 내게 띄워 보냈다.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왜?”
아이의 이름은 오하준. 나의 삼촌의 아들이다. 평생 결혼은 안 할 줄 아니 못할 줄 알았던 삼촌은 어느 날 뜬금없이 결혼 소식을 우리에게 선포했고 일사천리로 결혼과 동시에 아이의 임신 소식까지 알렸다. 하준이가 태어날 때 나는 산부인과에 가족들과 함께였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는 건 내 인생 처음이기도 하고 그간 무심한 척 나를 도와준 삼촌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서였다. 그날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난 모든 동물의 아이는 이쁘고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하준이는 참 못생겼었다. 심지어 나올 때 머리가 걸려서 속칭 ‘뚫어뻥’이라는 기구로 머리를 집어서 빼내었으니, 마치 콘 헤드 외계인을 마주한 줄 알았다. 그게 나와 하준의 첫 만남이다.
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우리 엄마와 달리 삼촌은 너무 늦게 결혼해서 하준과 나의 나이 차는 무려 2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난 처음 하준이는 내 조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동생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내게 건넸다. 동생이라니. 이 아이가 성인이 된다면 나는 몇 살일지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그래서 가끔 삼촌의 집에 놀러 가면 가족들과 함께 이런 이야기나 하며 농담이나 던졌다. 삼촌은 그럴 때마다 무언가 어색하고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나 죽으면 네가 키워야 하는 거 알지?” 한마디를 툭 하고 던졌다. 언젠가 이 아이를 내가 도와줘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부터였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장 큰 걱정은 누나였다. 나의 누나는 워낙 예민하고 감성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쉽게 자신의 밖으로 그것을 표출하기에 나와 다툼도 심했다. 이런 누나가 있어서 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사람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가 온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집에 돌아온 지 30분이 지났을까 도어록 소리와 함께 누나가 집에 돌아왔다. 누나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한마디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얘 왜 여기 있어요?” 그러곤 다시 나와 “데리고 가라고 해요.” 차갑게 말한 뒤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예상은 크게 빗겨나가지 않고 적중에 가까웠다. 하준은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기에 누나의 물건들을 만지기 시작했고 그 행위는 이내 파괴에 이르렀다. 자신의 물건들이 없어지거나 부서진 것을 마주한 누나는 짜증과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녀의 분노는 가족들을 향했다. 화가 잔뜩 난 누나 앞에서 여전히 장난을 치고 있는 하준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는 둘의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바탕 누나에게 혼이 난 하준은 나에게 달려와 얼굴과 몸을 비벼댔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하준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나라도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아마 하준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는 항상 밖에 있었고 내 곁에는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마저 볼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설 땐 비디오가 나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친구 역할을 해주었다. 삼촌네 부부는 두 아이를 키우기 벅차서 우리 집에 맡기게 되었고 하준은 그렇게 부모와 멀어진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준이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낯선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건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그렇게 난 하준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겼고 나와 같은 외로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다짐은 어느 순간 무너졌다. 그때의 나는 시험을 번번이 낙방했고 좌절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집에 혼자 있고 싶었지만, 하준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날은 가족들은 나만 믿고 하준을 집에 두고 모두 외출해있던 상황이었다. 나는 모든 게 귀찮아서 거실에 기절한 듯이 누워있었다. 하준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내 머리를 잡아 뜯어보곤 일어나지 않자 내 몸을 이곳저곳 밟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놀아달라는 하준의 구애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시체처럼 그저 누워있었다. 그러자 하준은 거실을 벗어나 주방으로 뛰어갔다. 주방에 물건들이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떨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준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집이 떠나갈 듯 우는 아이의 소리가 난 이렇게 시끄러운지 몰랐다. 이래서 아기가 있는 집이 왜 층간소음을 유발하는지 알게 됐다. 15분이 흘렀을까, 나는 그의 울음을 듣고만 있다가 한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는 건데?” 다짜고짜 하준의 앞에선 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호통에도 하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그간 외로웠던 감정을 모조리 토해내는 듯 보였다. 한 주에 한 번 부모를 만나지만 동생으로 인해 오롯이 본인에게만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가 미웠던 것일까?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짜증이 났고 그냥 날 괴롭히는 하준이 너무나도 미웠다.
결국, 나도 모르게 하준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오줌으로 가득 차 있던 기저귀는 질척한 소리를 냈다. 하준은 그 순간부터 더 악을 써대며 울었다. 그리곤 주방 바닥에 토를 뿌려댔다. 찐득한 액체들은 바닥과 하준의 몸을 적셨다. 하준의 토 냄새가 온 집안을 감쌌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와 하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지금 너무 힘든데, 너까지 왜 그러는 거야.” 나는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았다. 토 냄새가 진동하는 집안에서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서였을까? 하준이도 우니까 그냥 나도 울고 싶어졌다.
그때였다. 하준은 울음을 멈추고 토가 잔뜩 묻은 손으로 울고 있던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내가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내 얼굴 앞에 본인 얼굴을 들이밀면서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 그리곤 나에게 울지 말라는 듯이 계속 웃으며 내 앞에 서 있었다. 한순간에 미안한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나는 하준이가 서럽게 감정을 토해내며 울 때 어떤 행동을 했을까. 나는 하준이가 우는 게 짜증 나서 소리를 질렀고 때리기도 했다. 그런데 한없이 작고 여린 존재는 나에게 다가와 미소를 보이곤 나를 토닥여주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내 손가락을 간신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손을 지닌 아이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간신히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방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냄새는 여전히 심했다. 그래서 베란다 문을 열고 환기도 시켰다. 바람이 밀려들어오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이제 하준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몸을 씻겼다. 물이 어색한지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발버둥이라도 나는 버겁게 느껴졌다. 엄마도 이랬을까. 우리 할머니는 더 힘들었겠지. 나는 한 명도 버거웠는데 여럿을 키운 그녀들이 내심 대단해 보였고 존경스러웠다. 목욕이 끝나고 수건으로 젖은 하준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새로운 기저귀로 갈아입혔다. 하준이는 뭐가 그리도 신났는지 기저귀를 갈아입자마자 거실과 주방 그리고 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하준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한 손에 든 채로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아기를 돌보는 우리 할머니처럼.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지쳐갈 무렵 아파트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난 나의 구세주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장바구니와 함께 돌아왔다. 나는 할머니가 들어오자마자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그랬냐며 웃으며 달려오는 하준을 안아주었다. 난 그녀의 곁에 있는 하준의 볼을 만지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날 위로해준 하준에게 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보답이었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 꽤 험난하고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건 마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과 비슷하다. 이쁘고 귀여운 강아지를 숍이나 애견카페에서 잠깐 보는 건 너무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분양을 받고 키우게 된다면 챙겨줄게 너무나도 많다.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계속하고 사고를 치는 강아지들은 보호자의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바라보고 있을 땐 한없이 이쁘지만 내 공간 속으로 들어온다면 가끔 강아지는 작은 악마로 돌변하니 말이다. 아기를 키운다는 건 이런 것이다.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린 인내와 노력 그리고 참을성을 함께 지녀야 이들과의 동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아기를 키운다는 게 우리에게 무조건적 인내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울고 있는 나에게 위로를 건넨 하준이처럼 아기들은 우리에게 주는 것도 있다. 서툴지만 순수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아기들을 보면 힘든 것도 이겨낼 수 있고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사람은 추억에 먹고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하준이 준 위로와 추억을 생각하며 힘이 들 때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못난 형에게 위로를 건네준 하준이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하준이는 삼촌네 부부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본 지 오래되었는데 오랜만에 놀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이 하준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랑 과자 사 가지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줄래? 다시 만나면 환하게 웃어줘. 하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