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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28. 2022

창업 일기를 열며 엄마에 바칩니다.

 창업 일기는 엄마를 향해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


 집을 나갔던 엄마가 시작하겠다고 한 것이 궁중음식이었다. 마음대로 하는 아빠와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했다. 연락을 수소문해서 엄마를 찾으니 엄마는 가까운 친구 집에서 묵고 있었다. 엄마는 어렵다고 힘들다고 친정엄마에게 징징 거리는 딸이 아니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문정동 외할머니 댁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멀리 경기도 끝자락의 친구네 집까지 가 있었다.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는 내내 울며 불며 지내다 보름 만에 엄마에게서 연락을 했다. 아빠도 아니고, 동생도 아니고 오직 내게만 연락이 왔다. 함께 궁중음식을 배우는 학원을 등록하러 갔다. 엄마는 100만 원이 넘는 수강료에 머뭇거렸다. 엄마 때에 현모양처는 직업의 종류에 하나였으니, 엄마는 요리학원에서 각종 잔치 음식과 신선로 같은 궁중 음식도 할 줄 알았다. 폐백음식을 하는 나름 고부가가치의 장사를 하겠다고 포부를 열었다. 하나 세월은 흘러 엄마도 중년이 되고, 폐백음식을 하는 가게를 열기에는 망설여졌다. 

" 너 결혼할 때까지만 참으련다." 

 친정에서 멀지 않은 양재동에 집을 계약하고 학원을 다니려고 하던 엄마는 일주일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집을 돌아왔다. 그리고 아빠를 따라 전처럼 약국으로 출근을 했다. 


 아버지만 약사이고, 엄마는 약사가 아니다. 독일에 약사 보조업이라는 전문 자격증도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엄마는 아빠 옆에서 조제를 돕고, 일반약을 건네준다. 퉁명스러운 아버지를 대신해 손님을 달래고 은행업무를 본다. 복약 설명을 뺀 나머지 일은 엄마가 다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약국은 아버지의 것이다. 약사는 아버지이고, 엄마의 직업은 이름이 없으며 엄마의 업무는 세상이 계산에 넣지 않는다.  

  약국 자리가 바뀔 때마다 생각이 다른 이 두 동업자는 갈등을 빚는다. 엄마가  그간의 경험을 살려서 좋은 목의 약국 자리를 알아봐도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 뜻대로 했다. 아빠도 아빠 나름의 일에 대한 관점이 있게 마련이다. 

 엄마가 집을 나가는 사건이 생겼어도 결국 아빠가 새로이 일하고자 하는 약국에서 두 사람은 약국을 개업하게 되었다. 약사는 아버지니까, 그러하다. 아무리 가족들이 엄마의 노고를 인정해준다 해도, 세상에는 없는 가치가 엄마의 일이니 말이다. 



"뭐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다."

독일을 다녀오니 5년 사이에 훌쩍 마음이 늙은 엄마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파티시에라는 동생의 꿈을 일깨워주는 기간 동안에 약국은 코로나로 폐업 위험에 처했다. 그간 산부인과와 소아과 위주의 여성병원 앞에서 직원도 거느리며 나름 잘 되던 약국은 코로나로 2년을 시간을 잃고, 출산율 감소로 병원이 통폐합되는 위기를 맞았다. 

다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겠다. 두 분의 나이 일흔이 넘은 오늘에서야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다니,

걱정이 앞섰다. 20년 전, 긴장과 갈등에 못 이겨 집을 나가고 이혼을 감행하려 했던 엄마는 세월에 흘러 묻혀버렸다. 지레 미리 걱정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엄마 자신도 모르는 엄마의 재능, 엄마의 사명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밥을 안 싸주더라."

서울에 먼저 올려보던 큰아들 내외에게 막내딸을 맡겼다. 외할머니는 서울에 집까지 마련해준  큰 아들 부부가 막내 동생 건사 잘하겠지 싶어, 먼 마산에서 서울로 엄마를 유학 보냈다. 서울로 공부하러 홀홀 단신 마산에서 올라온 엄마를 큰외삼촌은 상업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며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큰 외숙모는 엄마의 도시락을 싸주지 않았다. 큰 외숙모의 자식이 셋이나 되고, 큰 딸이 엄마와 터울도 10살 남짓인데, 엄마 밥만 싸주지 않았단다.  한창 먹을 나이의 중3은 배고픔을 참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엄마가 평생에 걸쳐 서러운 일이다. 

 먹고 먹임으로써 마음을 확인하는 이에게 배고픈 점심시간은 어떡했을까? 타임머신을 발명한다면, 제일 먼저 고1의 엄마에게 도시락을 지어다가 주고 싶다.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도 안 난다. 평생 사랑하는 사람들 입에 맛있는 것 들어가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이 점심을 못 먹고 학교를 다녔다니.


" 약국 그만하고 김밥 장사하련다."

엄마는 잘하고도 남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대신에 따뜻한 밥을 한 끼 지어주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대학 친구를 불러다가 상다리가 부러지게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엄마다. 누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반찬부터 바리바리 싸다 주는 사람이 엄마다. 아프다고 하면 냉장고가 터지게 채워 넣어주는 사람이 엄마다. 코로나가 지나고 거짓말 안 하고 싸다준 음식 버리기에 바빴다고 고백한다.  처음 약국을 시작하던 30년 전부터 아버지와 딸 둘의 삼시 세끼를 다 차려낸 사람이 엄마다. 엄마에게는 끼니가 전부다. 나의 엄마는 맛있는 것 챙겨 먹이는 것이 낙인 사람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의 나라 살이에서 제일 힘든 것은 친구 만들어주기였다. 나조차도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인간인데, 아이들 친구를 만들어주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큰 아이는 어찌어찌 신경을 잔뜩 써서 해결이 됐는데, 작은 아이는 여력이 없어 늘 혼자였다. 

 2만 원이 넘는 올 컬러의 Kids 베이킹 책을 사고 아이와 하고, 맨 앞장부터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책 대로 따라 해도 결과물은 전혀 다르다. 베이킹을 배운 적 없는 데다가, 아이를 참여시켜서 진행하다 보면 원하는 대로 아름다운 모습이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유럽은 디저트의 나라이고, 디저트는 하나의 식사 섹션이기에 쉽게 베이킹을 할 수 있는 오만가지 상품들은 늘 슈퍼에 즐비했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딸과 몇 번 만들어본 쿠키는 딸이 친구 하고픈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다가 같이 했다. 주방이 어지러워지는 것쯤이야, 전혀 상관없다. 시간을 들여 함께 함으로써 내 아이와 친구가 돼주기만 한다면야, 뭔 짓인들? 


결국, 엄마도 나도 음식으로 이야기를 건네었나 보다. 동생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우리는 그런 여자들이다. 창업일기는 나와 동생의 것이 아니다. 엄마로부터, 엄마의 엄마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 그들의 삶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먹거리에 신경 쓰고 배려해주는 사람들은 파티시에가 될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여왕의 오후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태어나고야 말 운명을 타고났을 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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