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Aug 21. 2022

대인배를 찾습니다.

카페를 준비하면서 막막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호박씨는 한국에 없은지가 5년인 데다, 들어오자마자 코로나로 관계가 단절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사회 경력이 단절된 지 7년 차에 시작한 창업 준비였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싶었다. 

파티시에인 동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꿈은 꾸깃 접고, 영어 과외로 이 학생 집, 저 학생 집으로 이동하는 날들이었다. 제과업계를 떠난 지 5년이 넘어가기 시작. 계속 남아 있던 이들은 이제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가니 꼴 보기 싫어 연락을 끊었다. 떠난 이들은 떠난 대로 후회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서 카페 창업 따윈 알지 못한다. 르 꼬르동 블루를 함께 졸업한 홍콩 친구는 아버지가 차려준 파티세리가 자리 잡은 지 10년이라고 했다. 제일 듣기 싫은 소식은 아마 그 홍콩 친구였을 것이다. 


업계의 아는 이들에게 늦깎이로 연락하기도 싫고, 창업을 부추긴 언니는 문외한 주부이니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인스타부터 뒤졌다. 예술적으로 마들렌을 만들어내는 인스타에서 가장 핫한 그 집, 홍대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배낭을 메고 동생은 분당에서, 호박씨는 강남역에서 출발. 홍대에서 마들렌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L이었다. 

반지하의 조그맣디 조그만 가게. 주먹만 한 마들렌 한 개에 4천 원이 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개 한 개가 핸드메이드의 기운이 느껴지는 정교함이 있었다. 이 집처럼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신나 했다. 따라 할 대상이 있고 벤치마킹할 성공한 모델이 있다면 그것으로 길은 보이는 셈이니 말이다. 오너 파티시에로 보이는 분이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면서 주방 안팎으로 다니셨고, 붙임성 있는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하며 마들렌을 하나하나 포장해주었다.

  덕에 용기가 좀 났다. 마들렌을 아무리 연구해도 모양이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는 동생에게 L사의 인스타그래로 직접 질문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이 집 너무 멋있어서 이렇게 되고 싶은 꿈을 가진 파티시에 지망생이다라고 소개하면서 마들렌 틀을 어떤 브랜드를 쓰시냐고 물으면 될 듯했다. 

그간 용기에 펌프질을 해 둔 덕에 동생도 베짱이 생겨 DM을 보냈고 돌아온 답은 다음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 영업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어. 꺼져."

예의 바른 거절도 아니었다.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답장이었다. 매일 솔드 아웃이 되고, 자리 잡은 지 몇 년이 된 분이 대인배이기는커녕 인심이 야박하기 그지없다니 충격적이었다. 

우린 잘되도 절대 저렇지 말자 굳게 마음먹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다 알려드리겠습니다. L사의 답장을 보며 우리가 단단히 결심한 바였다. 




친정 근처 구움 과자집, O는 동생의 로망이었다. 파티시에와 파티시에의 남편 그리고 친정엄마가  셋이서 시작하는 조그만 아파트 상가의 지하 가게는 무럭무럭 자라 2호점까지 생겨났다. 구움 과자의 성지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코로나 즈음이었다. 

오너 파티시에인 주인분이 한 김 식힌 구움 과자를 포장하다가 동생이 휘낭시에 한 개를 사 집으면 설명이 백 년이었다. 어떤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는지, 오늘 안 먹을 시에는 냉동에 넣어야 한다며 사랑하는 딸아이 시집보내는 친정 엄마만큼이나 꼼꼼하게 자신이 만든 휘낭시에를 알리고 또 알렸다. 

L 파티시에로부터 쌀쌀맞은 거절을 당했지만, 용기가 남은 동생은 

" 여기 몇 평이신가요?"

하고 갑자기 질문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답해주며, 미소를 짓는 주인분에게 동생은 디저트 카페 창업을 준비한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똑같은 콘셉트의 매장을 바로 옆 집에 내면 어쩌려고 그런 영업 비밀을 알려주고 그런데? 

누군가는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마들렌 틀을 알려주면 L 사의 매출에 타격이 있을까? O사의 제품을 사 먹고 따라 하려고 O사 옆에 딱 붙여 매장을 낸다고 한들 O 사의 매출에 변동이 있을까? 


우린 답을 알고 있다. O사의 2호점 오픈 소식에 몇 백개의 답글이 달리고, 답글 하나하나 오너 파티시에의 건강과 성공에 진심을 담아내고 있다. 

반면 L사는 어떻냐고? 

호박씨가 인스타를 종종 째려보는데, 괄목할 만한 발전은 없다. 살짝 내림세인 것 같다. 홍대 방향을 향해서 저주를 퍼부어서 그런가, 인스타 사진에도 기운이 달려 보인다. 꼬시다! 마들렌 틀 브랜드도 안 알려주더니만! 

매거진의 이전글 스토리가 꿈틀거리는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