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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Sep 22. 2022

경단녀 해결이 시급합니다.

경단녀라는 상황을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1번이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의 뒤를 밟아가며 나이 먹어가는 내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공황장애를 비롯한 기질, 체질 그리고 관계 맺음까지 빼다  박은 이가 나였다.  엄마, 아빠를 한국에 와서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결혼을 하고 내가 주인이 된 가정을 따로 만들어 내면 부모와는 영판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보통 착각이 아니었다.


중2 아들이 슬슬 시동을 건다. 괜찮다 괜찮다 하고 다독거려보지만 아슬아슬한 마음은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술 수행평가네? 달달 외워야 하는데."

11시 잠자리에 들려다가 반 단톡방에서 수행평가를 발견한 아들이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렸다.

"오늘 조금 하구 내일 조금 하면 되지머."

단순 암기는 너무 싫다며 한국 교육은 그냥 다 외우라는 식이라서 문제라고 부르짖던 아들이 나름의 해법이 생겼나 보다 싶어 참으로 기특했다.



"띨릴릴리"

밤 사이에 부침개 뒤집듯 생각이 뒤집혔나 보다. 알람을 듣고 거실에서 자고 있던 내 이불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아들은 학교 안 가고 싶다를 연신 중얼거렸다.

머 하는 소리겠지 싶어서 먹고 힘내서 가라고 소고기를 손으로 다져 넣은 볶음밥을 금방 해  내었다.

깨우는데도 고역이었다. 간디가 폭력은 가장 게으른 자의 것이며 비폭력은 창조적인 자의 것이라 했건만, 얼마나 더 머리를 짜내서 양육을 해야 하는 걸까? 양육의 매일은 간디의 나라 살리기와 그 무게가 다르지 않다. 내겐 그렇다.

굴소스 듬뿍 넣어 짭짤하니 감칠맛 나는 볶음밥은 단 한 숟갈만 아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샤워를 10 분하더니 지각하면 벌점 받으니 안 가는 게 낫겠단다.

아직도 포기를 안 했구나.

만일 출근하지 않았더라면,

아침 시간의 무게가 천금 같지 않았더라면

아들의 등 스매시는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 였을 것이다.

아들을 향한 소리 지름은 5분이 아니라 30분이었을 것이다.


 "기술 수행평가 못 보면 죽냐? 누가 뭐라 해?"

암암. 살아보니 그렇다.

내가 노력한 것의 결과가 안 나오면 속은 상하지만

또한 살아진다.

노력의 열매가 주어지는 날은 노력한 당일 또는 노력한 때의 며칠 후는 아니더라. 그러니 살면서 기다려야 한다.

노력하지 않은 바는 대가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기술 수행평가 못 봐도 잘 살더라. 잘 보려고 노력한 시간이 없으니  0점은 당연하나 그 0점이 내 인생과는 무관하다. 난 0점짜리 삶이 아니다.


여왕의 오후로 출근하는 지하철을 탔다는 것, 기술 수행평가를 0점 맞을 줄 알면서도 등교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은 이미 100점이라는 증거다.

아들과의 아침을 털어버리고 앞치마를 두른다.


아들아, 엄마의 뒤를 바라보고 살아. 뒤를 밟아가며 살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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