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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Oct 09. 2022

눈빛으로 말하는 경단녀

도와달라는 눈빛을 읽는다. 바람이 담긴 눈빛을 안다. 말 못 하는 눈은 신기하게도 모든 것을 이야기하다. 

2천여 오피스이다 보니, 상가도 많고 자영업자인 상가 사장도 많다. 여왕의 오후에서 수없이 많은 생산자들과 만난다. 생산자들도 사업가다. 규모는 각양각색이지만 다들 보스다. 이 보스들의 세계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경력단절자로 주부로 살면서, 남의 나라 주재원으로 살면서 다양한 모습을 볼 기회가 생겼다면 여왕의 오후라는 곳에서 시작한 이 자영업자의 세계도 여러 군상들이 존재한다. 6월에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하고 이제 만 3개월을 채워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샐 수 없이 많이 만났지만, 마치 동해안에서 서핑하듯 이 사람 저 사람을 맛보니라 바쁘다.

 

" 사장님, 저 오늘 사실은요."

이웃 사장이 차를 마시러 온 듯하더니 이야기가 담뿍 담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음료대에서 그 눈빛을 짐짓 피하고 말하기 귀찮아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중인데도 눈빛을 피하기 쉽지 않다. 들어줘야지 뭐.... 포기다. 

사정은 친구가 같은 종류의 매장을 같은 건물에 내겠다며 오늘 만날 여기서 만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만약 여왕의 오후 바로 옆에 친구가 디저트 가게를 낸다면 뭐라고 해줘야 할까?  내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부터 든다.

 음료대 건너편에서 딱 한마디를 건데 이웃 사장은 짱구를 굴리고 있는 나를 읽고 있지 못하는 걸까? 주절주절 사정 이야기를 한다.  좀 있다가 올 친구를 말려야 한다며 자기도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녀는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우리 매장에서 커피와 스콘을 잘 사 먹는다. 

사실 한국 들어와서 물가가 너무 비싸 외식은커녕 지나가다 음료도 사 먹을 수 없었다. 여왕의 오후를 오픈한 이유 중의 한 가지이기도 했다. 디저트는 너무 좋아하는데 비싼 돈으로 제대로 된 디저트를 만날 수가 없는 한국에 계속 살려니 동생을 부추겼다. 그녀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 

이웃 사장님은 먹고살기 힘든 순간을 맛본 적이 있을까?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생활비를 정해두고, 외출하러 나서면서 그 생활비만큼만 써야지 하고 살아본 적 있을까? 자녀가 없는 그녀가 그리 살아본 적이 최근에 있을까 싶다. 여왕의 오후에 와서 늘 신나게 디저트를 사 가니 고맙기야 하지만, 카드를 잘 내미는 그녀에게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참은 시간이 있을까 추측해본다. 

어떤 친구이길래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하니 그녀의 동공이 흔들린다. 다리 건너 친구란다. 같은 학교 동창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만 한다. 사회 나와서 알게 된 친구구나. 다리 건너의 친구에 존대를 하는 이를 친구라고 부르니  이웃 사장님은 친화력이 갑이다. 친구라고 부르지만 친구는 아닌 관계다. 


여왕의 오후 매장 옆은 아직 임대되지 않아서 빈 상태이다. 이 비어있는 매장에 만약 친구가 들어온다고 한다면, 친구가 동종끼리 뭉쳐 있으면 서로 윈윈이라고 말한다면? 틀린 말도 아니지만, 일단 걱정은 되긴 한다. 

걱정스럽고, 말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다며 이웃 사장님을 반듯하게 쳐다보며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 분은 본인 걱정을 말하고 나니 이미 속이 시원한가 보다. 대화를 나누며 휘젓고 소분하는 수제청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고 보니 주문을 안 하셨구나. 지난주에 1시간을 썰어서 만들어 숙성시켜둔 귤청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그래, 걱정되겠다. 위로를 담아 따뜻한 수제청 차를 내밀었다. 

역시 그녀는 계산할 생각을 안 한다. 


같은 건물 사장님들은 이웃사촌 같다. 주부로 살면서 마주치는 이웃들 같은 느낌이다. 생업이라 치열할 것 같지만, 이 또한 사람 간의 일인지라 뚜껑을 열고 보니 관계 맺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종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매장의 에너지와 기운은 다르기 때문에 1:1의 경쟁자는 없는 셈이다. 

와서 차를 얻어먹고 본인 고민을 토로하는 이웃사촌이 있는가 하면, 실컷 팔아주고 선물까지 주는 이웃사촌도 있다. 내 고민을 토로하고 싶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는 이도 있다. 

세상에 연휴는 왜 있는 걸까? 코로나의 위세가 본격적으로 꺾이고 처음 오는 가을이라 축제에 여행에 2주 연속 3일 연휴다. 매장 실적이 반토막이 났다. 동생이 여왕의 오후 자리를 잡은 이유인 매장 앞 분수 광장에 하릴없이 앉아 있어 본다. 오가는 이도 없어 매장 건너 광장 의자에 앉아 병아리색으로 빛나는 여왕의 오후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웃 사장님이 지나가신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듯한 눈빛이면 고맙기가 그지없다. 초짜에 신병에 오픈 만 2달이 안된 이가 매장 앞에 앉아 있다면, 사연은 뻔하다. 그리고 그 사연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눈빛과 너무 빠르지 않은 걷기 속도라면 내 속을 보여주고 싶고도 남는다. 

" 연휴는 다 그래요. 이번 달은 나도 포기야. 거기만 그런 거 아니에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뜨듯한 밥 한 공기 먹은 듯이 든든한 느낌이다. 나만 불행한 거 아니다 싶은 이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기분이 채워 들어가면, 힘이 난다.

 여왕의 오후에서 만나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다. 나만 이런 거 아니지 하며 사람들을 살피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니 고민을 토로하며 공짜 차를 마시고 가는 이웃 사장님에게 다음번에 마주쳐도 웃는 낯으로 대할 것이다. 물론 말은 길게 안 섞으려고 걷기 속도는 좀 올려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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