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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Nov 07. 2022

여왕의 오후는 꽃집? 파티쉐리?  

착각도 단단히 착각이었나 보다. 이 정도로 꽃을 고르는 실력이면, 매장에 꽃만 꽂아 두면 다들 앞다퉈 사갈 줄 알았다. 오늘의 꽃이라고 이름도 붙여두고, 만원으로 한 다발을 만들었으면 가격대도 적절하다 싶었다. 

주변 꽃집도 염탐 차 가보았다. 시장조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첫 번째 염탐, 호숫가 다리 건너편 상가에 꽃을 저렴하게 판다고 광고하고 있어 방문해보았다. 저렴한 가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몇 안 되는 꽃들이 냉장고에 갇혀 있었다. 버린 강아지들처럼 보였다. 시들시들한 꽃들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은 무인가게 아닌 무인가게처럼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냉장고 안의 꽃들을 집어가고 알아서 포장해가고 계산도 알아서 해가라며 카드 기계 사용법이 쓰여있었다. 돌봐주는 이 없이 며칠이나 이 꽃들은 꽃 냉장고 안에 처박혀 있었을까? 애완동물 파는 가게에 주인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화가 났다. 

두 번째 염탐, 꽃집인데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계셨다. 반려견이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짖어댔다. 작은 몸집에 겁이 많아 보이는 눈을 가진 강아지는 매장에 나와 지내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짖어댐에 쫓기듯 꽃을 고르고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나와야했다.

세 번째 염탐은 같은 건물 위층의 고급 꽃매장. 디스플레이도 나이스 하게 되어있는 데다가 꽃값도 비쌌다.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특별한 날에만 이용하게 될 것 같았다. 

세 가게보다 꽃도 싱싱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디저트 가게이니 개도 키우지 않고 동생과 나는 짖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꽃은 팔리지 않는다. 한 달 동안 단 2번 팔았을 뿐이다. 절망적이다. 생업이었다면 밥이나 먹었을까 싶다. 10년짜리 경단 해결은 절대 순식간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Edeka는 가격대가 있는 편이다. 독일의 슈퍼들은 타깃으로 하는 소비층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있는데 에데카의 경우 슈퍼들 중에서도 전반적인 비싼 편이였다. 에데카에서 가성 좋은 제품은 꽃이었다. 인근 농장에서 공수되어오는 것으로 짐작되는 꽃들이었다.

 Hof, 우리가 흔히 호프집이라 부르는 이 호프는 독일어로 농장, 또는 집을 의미하는데 오버 오젤에서 5분만 차를 몰고 나가고 넓은 경치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닭이나 꽃, 옥수수를 심은 농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니 에데카의 공산품은 비싸도, 산지의 꽃은 저렴했다. 독일답게 합리적이다. 

다만, 농장 주인이 포장은 해두지 않으니 한 손에 쥐게끔 묶인 다발은 절단만 되어 있다. 사 들고 와서 선물용으로 포장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었다. 포장지 같은 문방구들이 예술적으로 아름다웠지만, 그 가격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비쌌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메이드 인 저머니의 포장지들은 때깔 고왔지만, 살 수는 없다. 꽃값이 5천 원인데 포장지가 5천 원에 달할 셈이었다. 

독일판 다이소, 1 Euro 마켓, 즉 천 원 상점 같은 매장에서 미리 포장지를 고르고 골라뒀다. 까딱 잘못 골랐다가는 꽃다발의 분위기를 망칠 유치한 포장지도 있기에 심혈을 기울여 골라본다. 

외식비가 비싼 독일이니 식사 초대는 집으로 받곤 했다. 국제학교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학교이다 보니, 행사 때 꽃 들고 갈 일도 많았다.  예를 들면, 딸의 기타 발표회 같은 때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발표하는 작은 연주회다. 독일 선생님의 진도 빼기란 달팽이 저리 가라이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작은 별을 들으러 갈 때는 청바지 차림에 손수 만든 에데카 꽃다발이 딱이다. 

뭐든 내 손으로, 뭐든 거품 없이, 담백하게 살았던 그 시간들에 맞게 삶의 방식을 개조시켰다. 생각도 소비도 딱, 독일 중산층으로 살았다. 간소하고 꾸밈없는 그 독일의 삶에는 꽃과 자연이 있었다. 아침에 들에서 온 싱싱한 꽃은 5천 원이었고, 5분만 차를 몰고 나가면 노란 유채꽃 밭이나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는 날들이었다. 



" 하고 싶은 것 하고 사시네요." 

어제 드디어 두 번째 꽃을 팔기 성공했다. 첫 번째로 꽃을 사간 손님이 3주 전이였다. 3주간 내 꽃들은 팔리지 않았고, 매장 디스플레이용으로 소진했다. 3주 만에 꽃을 사간 손님은 장미들 한 송이 한송이가 다 이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매장 앞에서 꽃을 고르고는 여왕의 오후로 들어오더니 이런 매장에서 일하면 행복하겠다고 하신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중이구나 싶다. 아플 때 꽃을 선물하려고 꽃시장을 가고 꽃을 지고 걸어오며 힘들었지만 기운이 났다. 작년 요맘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산책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걸으며 위안을 받았다. 사람이 아닌 것으로부터 위로는 얻었다. 말과 대화에서 힘을 얻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경험을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지금의 꽃을 파는 내가 되어 돌아왔다. 

꽃 사간 손님은 여왕의 오후가 있는 건물 36층에서 일을 하신다고 한다. 36층 이어도 밖에 내다볼 여력은 1초도 없고, 일하는 곳은 어디여도 딱히 좋지는 않다고 하신다. 36층이면 광교 호수가 훤히 보이고 채광도 좋을 터인데, 오히려 여왕의 오후를 부러워하신다. 

단골이 되어 다시 한번 오신다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요새와 꽃을 팔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내 봐야겠다. 쓰디쓴 순간들이 밀려오는 때가 있다면, 은은한 꽃향기만 만나는 이런 때도 있다며 더 자주 꽃 사러 오시라고 영업도 해봐야겠다. 

" 꽃 사세요.  꽃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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