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팝콘을 먹을 수 있고, 매장들 앞에 있던 온도 측정기가 사라지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공황을 만나 자체 자가격리 중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아이들과 아웃백에 갔다가 반도 못 먹고 휘청휘청 돌아왔다. 걸어갈 거리에 있는 바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꼭 나가야 할 일과, 나가지 않을 수도 있는 일들의 경계 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외출은 괜찮고 어떤 종류는 안 괜찮은지 시작에 앞서, 나에게 묻는다.
" 어떨 것 같아? 멀쩡할 것 같아?"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코로나의 시작으로 속한 공동체와 함께 할 때는 악착 같이 시켜 먹거리를 챙겼다. 배달음식에 새벽 배송으로 냉장고도 꽉 채워두었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욕망의 덩어리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나만 아프고, 내 일상이 무너져 내리니, 욕망은 커녕, 삶도 스르륵 자취를 감추려고 했다. 제일 무서운 것, 그것은 나와 직면하는 것이다. 그간 태산만 한 바위로 짓눌러 둔 내가 산산이 바위를 부시고 뚜벅뚜벅 걸어 나와 눈을 맞대어 건너편에 앉아 있는 듯하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떨어뜨린 핸드폰은 어제저녁 6시부터 먹통이다.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검은 선이 생긴 시간은 오후 1시였다. 아이가 핸드폰에 선이 생겼다며 얘기해줬는데,
" 작동은 되지?"
라며, 넘겼더랬다. 그리고 6시 핸드폰 화면은 까맣다. 켜지지 않는 핸드폰을 보며 아이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 거봐!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엄마."
삶이라는 스크린도 꺼지기 전 실금이 생기던 때가 있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나고, 흐릿해지는 징후가 보이는 때가 분명 여러 번 있었다.
성수대교를 지나 응봉동 집에서 분당 약국까지 출퇴근을 하시던 부모님은 그날 아침 늦잠을 주무신 탓에 출근이 10분 늦으셨다. 무너진 성수대교 대신에 동호대교로 돌아 타고 출근하셨다. 중학교 1층에 있던 공중전화를 쉬는 시간 내내 붙들고 있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부모님이 약국 전화를 받으시지 않아 계속되던 통화 연결음 속에서 나는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 별일 없을 거야."
퇴근하신 엄마는 무덤덤 말했다.
" 건너갈 때마다 흔들리더라고. 오늘 아침에 늦잠 자서 다행이었지 뭐야."
한 생명이든, 여러 생명이든, 존재가 사라질 때에는 징조가 있다. 우리 한 명 한 명에겐 존재의 이유와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이 끝났다는 신호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은 온다 싶다. 독일에서의 시간을 돌이켜본다. 화병이라 이름 지어진 병을 앓았던, 할머니와 엄마를 보며 알아챘었어야 했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정답을 구해야 할 사람은 지금 당장, 여기 이 자리의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근데, 딸아. 엄마한테 화낼 일은 아니잖아?"
섭섭한 마음에, 딸에게 대꾸해본다. 분신 같은 핸드폰이 작동이 안 되니 딸의 눈도 꺼진 스크린 마냥 캄캄하다. 님편도 이래서 아픈 나를 붙들고 화를 내는구나. 내 탓이건 네 탓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타들어가는 듯 안타까운 상황이 되면 눈앞에 보이는 말을 알아듣는 대상에게 화풀이를 한다. 나 또한 그러하니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가족, 배우자, 연인을 영혼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해버리고는 돌아서서 후회한다.
그럴 땐, 용서해주면 되는 것 같다. 나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한 이가 내게 건네고 싶은 말은 ' 미안하다'인데 본인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럴 땐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한번 해본다. 미안하다 한번 해보니, 두 번 세 번도 가능하더라. 주말 내내 남편에게 미안하다 했다. 아픈 건 난데 미안하다, 미안하다 종일 그에게 말로 앉아 주듯 답해주었다. 일요일 밤이 되자 그제야 그는 내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손을 잡은 남편의 마음을 읽어 내려봐 준다.
" 나한테 미안하고, 또 섭섭하지?"
"..."
차마 답하지 못하고 끄덕거리는 그가 안쓰럽다.
사과할 수도 있고,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서 좋다. 그가 차마 입으로 꺼내 놓지 못하는 말을 그 앞에 읊조려주는 내가 기특하다. 존재함이 뿌듯함으로 바뀔 수도 있구나.
딸이 거듭 사과한다. 엄마 탓이 아닌데 엄마에게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
딸은 사과를 금방 하고 쉽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사과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아이의 어떤 '미안'에도 거짓은 없음을 안다. 나도 딸아이쯤으로 돌아가야겠다.
"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버럭버럭 화를 내는 남편이 잠시 나가자 딸이 나에게 한 말이다. 아빠가 엄마한테 사과하면 될 일을 왜 저렇게 시간을 끌며 기력을 소진하는 거야 싶은 눈빛이다. 언제까지고 딸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영혼이길 기도해본다. 지나가고 있는 공황의 터널을 딸은 건너지 않을 것이다. 내 손으로 터널의 문을 닫을 테다. 나와 화해하고, 가족을 용서하며, 기꺼이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딸에게 미리 미안해 본다.
엄마가 빨리는 못할 수도 있으니 감안해 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이야.
대문 그림
오지은, The time when the dust is flying